내면의 문턱으로 향하는 ‘내 가방 속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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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내면의 문턱으로 향하는 ‘내 가방 속 물건들’
내달 19일까지 드영미술관 기획전
김자이, 휴식방법 탐구로 자아 집중
이유빈, 어린 시절 고향 ‘섬’ 모티브
이인성, 프레임에 구상과 추상 공존
박정일, 반려동물 공생관계로 인식
  • 입력 : 2023. 10.29(일) 14:38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드영미술관 왓츠 인 마이백 포스터.
가방 안에 들어있는 소지품이 갖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방 안에는 주인의 성격이나 취향,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가방 속’이라는 말은 넓게는 내 차 또는 방 안, 깊게는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나 감정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내 가방 속 물건들은 곧 나의 내면의 방으로 통하는 문턱이 된다. 광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자이, 이유빈, 이인성, 박정일 작가가 사소한 일상의 물건인 ‘가방’에서 미학적 가치를 발견해 전시를 연다. 드영미술관은 2023 기획전시 ‘What’s in my bag: 내 가방 속 물건들’을 오는 11월 19일까지 1,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전시 제목으로 쓰인 ‘What‘s in my bag(왓츠 인 마이백)’은 유명인들이 SNS, 유튜브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애장품을 가방 속에서 하나씩 꺼내며 소개하는 콘텐츠 명이다. 이 콘텐츠는 이른바 완판이 되게 하는 광고효과를 가지기도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소중한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가방 속 소지품은 곧 나의 삶, 즉 나 자신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전시에 참여한 김자이, 이유빈, 이인성, 박정일 작가는 이처럼 일상에서 미학적 가치를 발견해 자신들의 내면을 화폭에 그려낸다.

먼저 김자이 작가는 본인의 휴식방법과 타인의 휴식방법을 서로 교환하며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는 수천 건이 넘는 그동안의 공유 리서치 결과의 일부로 공간을 조성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잃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속도주의, 성과주의의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 방황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나 자신임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 관객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작품은 조용한 공간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살피게 하여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유빈 작가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상상을 건져 올려 섬을 모티프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섬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연결된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그에 수반된 과제들 속에서 평안과 안식이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실제 자연의 색채가 아닌 푸른 계열의 한 가지 색을 사용하거나 섬을 하얗게 도포해 의도적으로 여백을 두는 것은 마음 속 어딘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쉬어갈 만한 곳을 마련하게 한다. 작가에게 있어 섬으로 향하는 것은 결코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세계로 향하기 위한 사유(私有)의 공간이자, 사유(思惟)의 세계인 것이다.

이인성 작 나만의공간.
이인성 작가는 평범한 삶의 한 장면을 포착해 그 현상을 보고 불현듯 다가오는 감정 또는 깨달음을 그림으로 각색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고뇌가 응축되어 작품이 한층 더 깊어진다. 한 프레임 안에서 무심해 보이는 두툼한 터치로 그려낸 구상적 형태의 한 장면과 추상성을 갖는 주황색 점이 함께 존재하고 비교적 차분한 색감과 눈에 띄는 형광의 색이 공존하는 등 대조적 성격을 띠는 여러가지 장치가 조화를 이룬다. 삶의 목적을 가리키는 기표로 작용하는 화면의 주황색 점은 작품 속에서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아이러니한 요소들은 이인성 회화의 큰 특징이다.

박정일 작 Family(가족).
박정일 작가의 화폭에는 반려동물이 등장한다. 인류역사에서 인간과 동물은 오랜 시간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주로 가축으로 취급되어 농사일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식용으로 쓰이며 의복의 재료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 증가, 소득 증가의 사회변화와 맞물려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모든 작품의 동일한 명제 ‘Family’에서 말하고 있듯 작가에게 반려동물은 벗이고 가족이다.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 되어 심리적 공생관계로 깊어지고 있는 이들은 화면 안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들의 주인공으로 의인화됐는데 작가의 상상과 위트가 더해져 더욱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의 드영미술관은 동구 운림동에 있다. 전시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