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노우에 가츠오 훗카이도대학 명예교수가가 30일 나주시 역사공원에서 열린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에서 비문을 낭독하고 있다. 정상아 인턴기자. |
이노우에 가츠오 훗카이도대학 명예교수가 30일 나주시 역사공원에서 열린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에서 일본군의 나주 동학농민군 학살 행위에 대해 사죄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이날 직접 작성한 낭독문을 손에 쥐고 제막식 단상에 올라 “1895년 1월 5일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 본부가 나주성에 입성해 1개월 이상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작전을 지휘했다”며 “동학농민군 전사자는 최소 5만명 이상, 사상자는 50만명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그다지도 처참한 토벌작전이 전개됐는가, 이같은 처참한 토벌전은 동학농민군 희생자 모두를 역사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실상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시한번 동학농민군 희생자와 한국의 모든 분들에게 일본인으로서 일본인 답사단 일동과 함께 마음으로부터 추도하고 사죄를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나천수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는 “일본 측이 2022년부터 모금 운동을 전개하자 우리 측도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이 모금에 동참해 순수 민간 성금으로 사죄비를 제작했다”며 “사죄비가 지식인과 시민 연대를 뛰어넘어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에 참가한 한일 동학기행 방문단 중 한 참가자가 낭독문을 듣고 흘린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정상아 인턴기자. |
한 참가자는 “일본군이 가했던 역사를 덮어 놓는다는 것이 양심에 위배됐다”며 “뜻에 동참하기 위해 여기까지 먼걸음을 했다”고 말했다.
역사공원에 조성된 사죄비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 동학군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을 사죄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사죄비 앞면에는 한국어로 뒷면에는 일본어로 각각 ‘나주에서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을 기리고자 일본 시민들이 먼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았다. 한국 시민과 나주시의 협력으로 비를 세우게 됐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앞서 사죄비 건립은 2016년 나주 동학답사에 참가했던 한일동학기행단 일본 쪽 연구자들이 제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 한 회원이 “왜 살육 역사를 발굴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일본 연구자들은 “1894년 일본군이 가해했던 역사를 덮어 놓는다는 것은 학자적 양심에 위배된다. 나주에 작은 위령탑이라도 세우고 싶다”고 답변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2006년부터 한일동학기행에 참여해 온 일본과 한국 역사학계 학자 및 시민들이 민간인 차원의 위령비를 건립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지난 2022년 일본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하고, 우리나라도 같은 뜻을 모아 모금에 동참해 나주 역사공원에 세워졌다.
한편 나주는 동학농민군 토벌의 전담 부대였던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1895년 1월 5일부터 2월 8일까지 35일간 호남초토영에 주둔하며 학살을 자행했던 지역이다. 당시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후비보병 대대가 자행한 동학농민군 학살의 구체적 실상은 제1중대(동로 부대) 제2소대 제2분대 소속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에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기록에는 ‘(나주성) 남문에서 약 400m 남짓 떨어진 곳에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고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섭 기자·정상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