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강진의료원에서 만난 박은숙씨가 자신의 딸을 안은 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정성현 기자 |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코로나19 확진 장애인 산모가 지역 거점 의료기관의 신속한 도움으로 무사히 분만에 성공했다.
특히 지역 내 최초로 산모가 분만 직전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여서 ‘전례 없는 상황에 의료기관·의료진의 세심한 대처가 빛났다’는 평가다.
지난 14일 강진의료원 신생아실 인근에서 만난 박은숙(33)씨는 자신의 딸 임시아(0)양을 보며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10개월간 한 몸에 있으면서도 눈으로 직접 볼수 없었던 자식의 모습이 그저 신기했기 때문이다.
영암군민인 박씨는 중증 지적 장애인으로, 임신 초기부터 강진의료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타지인임에도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강진의료원이 ‘지역거점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남편 등 가족의 추천이 컸다.
박씨의 시어머니 안막내(78)씨는 “아들이 산림청 소속으로 산불 화재 진압 일을 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가야 해 (산모) 곁에 자주 있지 못한다”며 “가족 입장에서는 장애인 산모를 안전히 받아줄 만한 곳이 필요했다. 다들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니기에는 거리도 멀고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지인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강진의료원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전국 장애친화 산부인과 서비스 현장점검’에서 △침대형 휠체어 등 의료장비 부문 △진료환경 편의성 부문 등 각종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또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에 선정, 전남도로부터 시설·장비 개보수 등의 비용 지원을 약속받았다.
![]() 박은숙씨의 딸 임시아양. 정성현 기자 |
박씨는 “유도분만 예정일도 잡아놓고 아이를 만날 생각에 매일 기다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전 열감이 느껴지는 등 몸이 좋지 않더니 기어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딸의 건강이 제일 걱정됐다. ‘제대로 분만을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도 컸다. 이런 상황에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떠오르는 대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강진의료원에 따르면, 코로나19에 확진된 장애인 산모가 지역 의료원에서 분만을 시도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스스로 대학병원을 찾거나 의료원에서 연계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장애인 분만 자체가 산모·태아의 위험성이 크고, 여기에 코로나19 확진까지 받은 상태라면 더욱 큰 불확실성을 안고 분만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모의 고민을 전해 들은 강진의료원은 이를 감행키로 했다. 지역 의료기관의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는 이유였다. 이후 모든 과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산모를 위해 △1인 음압 병실 △일반환자와 동선 분리 △코로나19 전용 소독 수술실 △의료진 전원 레벨D 방호복 착용 등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수직감염 등의 이유로 분만도 기존 유도분만일인 9일보다 하루 앞당긴 8일로 옮겼다.
수술을 집도한 김형태 산부인과장은 “박씨의 경우 장애인·코로나19 확진자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분만의 경우 어떤 비상사고도 있을 수 있는데, 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며 “1시간가량 진행된 수술 끝에 3.34㎏의 소중한 생명을 무사히 안을 수 있었다. 다행히 코로나19 수직감염도 없었다. 최근 지역 내 출생아가 줄어가는 가운데,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어 뿌듯하다. 앞으로도 지역민들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의료원에는 분만·수술·산후 치료·신생아 운반·방호 등 다방면의 문제를 예측·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전문의들이 포진해 있다”며 “지역 의료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지역민들이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의료 인프라를 누릴 수 있도록 ‘장벽 없는 의료 서비스 제공’에 꾸준히 힘써 나가겠다”고 전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