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에세이·최미경>나는 곰스크에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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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에세이·최미경>나는 곰스크에 도착했을까
최미경 수필가·광주문인협회 회원
  • 입력 : 2023. 11.16(목) 13:35
최미경 수필가
돌아보니 허허로운 시절이었다. 1986년 결혼으로 서울을 떠나 의지가지없는 대전에 둥지를 틀었을 때 서로만을 바라보며 시작한 소꿉장난 같은 생활은 즐길만했다.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면서 그곳은 안전하고 포근한 곳으로 자리매김하였고 더 이상 외지인으로 살아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5년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직으로 내 삶의 지도에 없었던 이곳 광주로 내려오면서 다시 벌판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힘들기만 했던 그 시절 우연히 만난 TV 영화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시선을 잡았다. 나도 저 곰스크로 가는 간이역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명확하진 않지만 공감이 되고 안타까웠다. 원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잊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큰 한숨 돌리고, 이제야 나는 책을 펼쳤다.

‘내가 사는 이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내는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마치 연극의 독백처럼 읊조리는 듯한 남자의 이야기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멀고도 멋진 도시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에게 곰스크로의 여행은 당연한 것이고 어쩌면 운명과도 같다. 결혼을 한 그는 아내와 함께 마침내 곰스크행 기차에 오른다. 곰스크를 향해 달리던 열차는 작은 마을 역에 잠시 멈추고 부부는 마을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기차를 놓치고 만다. 그때만 해도 심각하지는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자 달라진 아내의 좋은 기분에 전염되어 마을에서 며칠 머물면 다음 기차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기차가 왔을 때 놓친 기차의 표로는 승차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역 앞 작은 식당에서 일을 해주며 숙식을 해결하고 돈을 모으기로 했다.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안락하게 지내고 싶은 아내는 남의 집 일을 해준 대가로 낡은 소파를 받아오는데 아뿔사! 이 소파 때문에 기다리던 기차를 또 탈 수 없게 된다. 기차가 도착하자 아내는 소파를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소파를 실으려면 화물비를 내야 했다. 티켓 2장 값밖에 없는 그는 아내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끝내 기차에 오르지 않는다. 먼저 곰스크로 가서 자리 잡으면 주소를 알려달라고 아이를 낳고 나면 편지를 띄우겠다고. 여자는 임신 중이었다. 결국 기차가 떠난 빈 역에는 그들과 소파만 남게 된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곰스크였고 늘 철길만 바라보고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느라 아내가 아이를 가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남자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데 여자는 마을의 하나뿐인 노(老) 선생님이 쇠약해져 후임을 찾는다며 그 자리를 맡을 것을 권한다. 이제 막일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정원이 딸린 사택에서 편안한 삶을 살면서도 그는 언젠가는 곰스크로 떠날 것만을 꿈꾼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노 선생님은 말한다. 자신도 멀리 떠나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오랫동안 반항했지만 마침내 여기에서의 삶이 의미 없는 삶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고. 곰스크로 가는 열차의 기적소리는 여전히 그를 사로잡지만 이내 쓸쓸함에 휩싸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의 이야기는 끝난다.

나는 쉬이 책장을 덮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가, 노(老) 선생님이 그토록 가려고 했던 곰스크, 그곳은 어디쯤일까. 갈 수는 있는 곳일까. 책을 샅샅이 뒤져봐도 곰스크에 도착했다는 사람의 소식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자꾸 책장을 뒤적이며 아쉬움에 젖게 된다. 씁쓸하고 아쉬운 이 짧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 선생님은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실패한 인생은 없다고 위로한다.

수없이 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곰스크, 경유지 역에 내리는 바람에 기차를 놓쳤다 해도 하염없이 다시 올 기차를 기다리는 삶이라 해도 그것은 절대 나쁜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만큼 나이 들어 이 책을 읽은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둥바둥 살 때는 알려줘도 분명 깨닫지 못했을 전언(傳言), 저 먼 시간을 돌아보니 내 삶도 부단히 조금씩 곰스크로 향하고 있었나 보다.

익숙해진 곳을 떠나던 날의 서글픔과 불안, 빈 벌판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했던 시간을 견디다 보니 어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격랑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다 자랐고 이제 나와 남편은 베란다의 화초를 돌보며 조용히 나이 들어가고 있다. 별일이 없다면 우리는 빛고을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고 근처에 뼈를 묻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든 완벽한 삶은 없으리. 자신이 살아온 삶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면 그곳이 바로 모든 이들이 그토록 가 닿기를 원하던 곰스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