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거장’ 하야오는 왜 11세 소년의 방황을 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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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거장’ 하야오는 왜 11세 소년의 방황을 그렸나
미야자키 하야오 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입력 : 2023. 11.19(일) 16:39
미야자키 하야오 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튜디오 지브리 제공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영화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되물은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유해온 질문이자 많은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답이기도 하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82세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0년을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디테일한 디렉팅으로 평가받는 감독이라서 경륜에서 오는 탄탄함과 섬세함 그리고 화면의 아름다움 등은 객석의 시선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컴퓨터그래픽을 지양하고 손 맛을 담아 시각적으로 깊은 맛이 느껴지도록 한 아날로그적 배경화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감동이었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몰입한 작품이라서인지 마침점을 찍듯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 즉 자신이 겪은 어릴 적 환경과 성장통 등을 담고 있다.

폭격으로 잃게 된 어머니와 폭격기 군수품 생산을 하는 아버지, 엄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물학적 이모가 새엄마가 되고 그녀에게서 태어날 이복동생을 맞아야 한다. 모순된 환경 속에서 11세 소년 마히토로 대변되는 어린 미야자키 감독이 겪는 혼돈의 내면에는 자연스레 죽음과 삶에 대한 명상, 내세에 대한 상상력으로의 도피가 뒤따랐을 것이다. 타이틀 역시 어릴 적 여읜 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소설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1937· 요시노 겐자부로 著)에서 가져왔다 한다.

감독으로서는 최후의 역작을 만들고 싶었던 듯 자신의 기억을 담아냈고 구성과 디테일에 열과 성을 다한 흔적이 넘치게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이건 감독 자신을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일지언정 관객의 입장에서는 ‘과유불급…’. 수용하기에 버거운 복잡함이 다소 있었다.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3)처럼 판타지 구성이 갈수록 게임 못지않게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복잡한 은유를 알레고리의 축으로 삼는 추세에 부응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파편적 복잡함으로 인해 정작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흩어진다면 객석으로부터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법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물, 불, 바람이 공통적이다. 감독은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불을 다루는 소녀 히미에 대입시킨다. 히미는 끝까지 마히토를 돕는데, 어머니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군수공장에서 만드는 폭격기처럼 마히토의 앞에는 왜가리, 펠리컨, 잉꼬들이 물리쳐야 할 적이다. 항공기며 새들은 육지와 공중을 넘나드는 능력자들이다. 어린 마히토의 잠재의식 속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내지 소통부재의 벽이 있었는지 모른다. 새들은 이를 은유한다. 그밖에도 영화에는 하얀 방울 모양의 귀여운 와라와라들이 등장한다. 펠리컨의 먹이가 되지만 새들을 물리쳐주는 히미의 불로 보호받는 태생 전의 존재들이다. 이는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2020)의 태생 전 존재들과 흡사하다.

또한 나츠코와 일곱 할머니들의 외양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연상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독 사과와 같은 재난이 닥칠 것을 예고라도 하듯이 나츠코가 실종된다. 이런 요소들은 이미 학습된 콘텐츠를 차용하여 관객으로부터 당위성을 획득하지만, 썩 새롭지는 않다. 큰할아버지는 평화로운 이세계를 자신의 후손인 마히토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언급을 한다. 그러나 마히토는 이를 거부하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의 균형을 맞추겠노라 한다. 바로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빅터 프랭클은 “즐거움을 위한 추진력이나 고통을 피하는 추진력보다 의미를 찾는 추진력이 더 중요하다.” 했다. 삶의 의미는 누구에게 건네받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마히토는 긴 방황의 여정 끝에 얻게 된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필름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비견되리만큼 확실하게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들에게 내재돼 있는 지극히 일본적인 감성을 동양의 신비로움으로 유감없이 풀어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의 슬로건이 우리(K팝· K스토리 등)에게도 있음을 상기해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여!’.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