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메멘토 모리, 트루먼과 카터의 유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메멘토 모리, 트루먼과 카터의 유산
김강 호남대 영어학과 교수
  • 입력 : 2023. 11.21(화) 13:26
김강 교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여사가 엊그제 96세로 타계했다. 그녀는 카터의 삶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친구이자 연인이며, 사업과 정치는 물론 퇴임 후 인도주의 활동 등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진정한 동반자였다. 아마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에서 말한 ‘나의 소중한 위대한 동반자’에 비할 만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잘린의 사망 소식에 카터 부부가 백악관의 ‘품위’를 높였으며 77년간의 결혼생활 내내 진실하게 살았다고 애도했다. 연애까지 합쳐 무려 96년이나 이어온 두 사람의 관계는 절대 흔치 않은 특별한 인연이다.

어릴 적부터 고향 친구였던 두 사람은 1945년 해군사관학교 생도였던 카터가 잠시 집에 돌아왔을 때 데이트를 시작했고 1946년에 결혼했다. 카터는 당시 17세인 로잘린과 첫 데이트를 한 뒤 어머니에게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고 선언했다.

로잘린은 카터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활동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 백악관 홈페이지는 그녀를 ‘거침없는’ 연사이자 ‘근면한’ 영부인으로 소개하며, “내각 회의와 주요 브리핑에 참석했고, 행사에 대통령을 대신했으며, 대통령 특사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방문했다”며 그녀의 역동적인 활동상을 전했다.

그녀는 특히 미국인의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졌다. 남편이 임기를 마친 1982년에는 ‘카터센터’를 함께 설립해 국제적 이슈 해결에도 공헌했다. ‘부창부수’의 모범적 사례일 듯하다.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은퇴 생활을 한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 트루먼과 카터일 것이다.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재임했고, 지미 카터는 39대 대통령으로 1977년에서 1981년까지 백악관의 주인이었다.

1944년 말 루스벨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된 트루먼은 네 번이나 대통령을 역임한 루스벨트가 재임 중 갑자기 죽는 바람에 부통령 82일 만에 대통령직에 올랐다. 당시는 2차 대전의 막바지로 사람들은 그가 백전노장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을 맞수로 전쟁을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지 매우 걱정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결단으로 승전을 거두어 일약 인기 최고의 지도자가 됐다. 소위 ‘트루먼주의’ 혹은 ‘트루먼 독트린’이라고 불렸던 정책은 1947년 그가 의회에서 그리스·터키에 대한 군사원조를 요청할 때 선언한 새로운 외교원칙으로, 자유주의 진영에 대한 공산주의 위협에 힘으로 맞서 대항한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밝혀 냉전의 계기가 됐다.

트루먼의 진가는 은퇴 후 더욱 빛났다. 그는 백악관을 떠나던 날 비행기와 경호원을 거절하고 시민들과 함께 야간열차를 탔다.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이사비용을 빌려야 할 정도로 돈이 없었던 그는 정치나 사업과는 인연을 끊고, 생계를 위해 각종 기록과 공식문서와 씨름하며 책을 썼다. 전직 미국 대통령을 돈방석에 앉힌 회고록 집필은 그가 시초였다. 은퇴 후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트루먼이 효시다.

카터는 재임 중에 이란 문제로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퇴임 후 더욱 성공했다. 칠순 노령에도 불구하고 세계분쟁지역을 누비며 평화봉사자로서 헌신했다. 그가 이끄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카터센터는 지역분쟁 예방, 아프리카 농업개발, 개도국의 인권감시 등 다양한 국제평화운동의 허브가 됐다.

특히 집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삶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은 그의 주도로 더욱 활발한 국제봉사를 펼치게 됐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후와 신변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그의 희생과 리더십은 윤리적으로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매우 숭고한 것이다.

이외에도 영국의 대처, 프랑스의 데스탱, 독일의 슈미트 등도 은퇴 후에 문필이나 실천을 통해 국내외 평화의 조정자로서 사회적 에너지를 불태웠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퇴임 후 살아있는 대통령이 벌써 수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행적이 앞서 언급한 인물들과는 천양지차인듯하여 부끄러운 심정이다. 대통령으로서 공적인 임기가 끝나면 사회분열을 초래하는 정파 쪼개기나 이념적 분탕질 등 정치적 개입은 일절 금하는 것이 으뜸도리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국가적 공인으로서 자신과 정치적 계파의 치졸한 이해보다는 사회와 인류를 위하는 대사에 ‘올인’할 수는 없는지. 글로벌 수준에 언제쯤 이를까. 놀거리와 먹거리, 춤추기와 노래하기는 이미 우리가 글로벌 명인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요즘 마당이다.

현직 대통령과 영부인을 ‘누구누구 씨’라고 구태여 하대하며 쎈척하고 잰척하는 정치인들도 볼썽사납다. 권세에서 물러난 후의 행적과 거취는 현직보다 훨씬 중하다. 그래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과 명예를 남긴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메멘토 모리, 나의 죽음을 기억하라. 생전에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라. 로마인이 역사에 새긴 불멸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