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세상읽기·한정규> 생각이 난다, 1960년대 빛고을 광주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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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세상읽기·한정규> 생각이 난다, 1960년대 빛고을 광주 모습이
한정규 자유기고가
  • 입력 : 2023. 11.22(수) 12:41
한정규 자유기고가
가을이다. 모처럼 광주를 찾아 사직공원 옛길을 걸어 보았다. 지난번 왔을 때만 해도 이른 봄, 잔설을 털고 돋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들이 푸르게 자라 하늘을 떠도는 구름을 가렸였는데 다녀 간지 얼마나 됐다고 어느 순간 노랗고 빨갛게 변장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한잎 두잎 떨쳐 나눠 주고 있다. 고마운 나무들이다. 천사가 따로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 단풍잎 나눠주는 것, 1960년대 그 때도 그랬었는데 63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모습 변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그 땐 시내 변두리는 물론 충장로나 금남로 도심 할 것 없이 모두가 나지막한 작은 건물들이었으며 길도 좁고, 사람들도, 오고 가는 자동차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공원길도 한가했었다.

가을이면 백운동 철길 넘어 들판과 농성동 벌판 논두렁길을 따라 메뚜기를 잡으러 까까머리 아이들이 몰려 다녔다. 여름이면 극락강 상류 광주천과 만나는 가까운 곳에서는 물속을 드나들며 고기도 잡고 목욕도 했다.

그랬던 광주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언젠가부터 높은 건물이 누가, 누가 더 크고 높나 경쟁이라도 하듯 높이 올려 사람들이 웅성대고 여름이면 그 흔했던 메뚜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광주시내 북쪽 변두리 들녘 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태봉산도 계양방죽도 그 때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대인동에 있던 광주기차역의 옛 모습은 사람들 머리에서 멀어져버렸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산수동 지산동은 산 아래 작은 마을이었다. 무등산을 떠받치고 있는 산언덕에 숲만 있어 산토끼와 노루가 살았다.

또 광주천 공원다리아래 흐르는 물에서는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목욕도하고, 고기도 잡고, 그런 아이들 놀이터였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광주의 모습은 낭만이 가득했었다. 사직공원 숲속 진달래도 볼만 했다. 새들도 떼를 지어 노래를 불러줬다. 이제 그런 광주는 꿈속에서나 볼 듯싶다.

그렇듯 변한 건 광주만이 아니다. 세월은 무엇하나도 제자리에 놔두지 않았다. 변화에 변화를 줘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흉물스럽게 한다. 앞으로 60년 후 100년 뒤 광주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른다. 지상천국, 지상낙원이 될지?

변화하는 것 광주만이 아니다. 사람도 하나같이 그 때 그 모습 찾아 볼 수 없다. 10대 까까머리가 어느새 하얀 잔털을 뒤집어 쓴 늙은이로 변해버렸다. 성급한 사람은 육체를 땅속에 묻고 정신은 하늘 어딘가를 떠돌며 광주의 변한 모습을 보고 그래, 그래 많이도 변하는구나?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 해도 병들고 얼굴에는 주름이 너덜너덜, 허리는 굽고 손발은 틀어지고 그렇게 변했다. 그래서 더욱 더 어릴 적 살았던 빛고을 광주가 그립다. 그 시절 함께 놀았던 문홍종, 박춘웅, 조전, 정장래, 나종수, 전익수, 박응격, 김학모 그 친구들이 그립다. 아니 보고 싶다. 박진철 김인두 선생님도.

도심거리도 건물도 길도 옛 모습 찾아보기 쉽지 않게 변해버렸다.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1987년 12월 31일 광산군이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통합 그래서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니가 싶다.

그런 저런 변화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남동쪽에는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이 서쪽으로는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양림산 성거산 장원봉이 시가지를 둘러싸고 서쪽방향은 낮은 구릉지로 평야지대 그대로다. 그곳도 겉모습은 옛 그대로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