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구례를 휘감은 가을빛과 향기 ‘조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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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구례를 휘감은 가을빛과 향기 ‘조오타~!’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3. 11.22(수) 15:22
정연권 센터장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기상예보에 마음이 바빠졌다. 국화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작품 일부를 실내로 옮겼다. 현애국은 밧줄로 묶어 서로 연결했다. 농사는 기상과 연관돼 있어 늘 상 어렵고 힘든 부분이다. 올해는 벼도 과일도 수확이 신통치 않다. 벚꽃은 일주일이나 일찍 폈다. 국화는 꽃봉오리 형성 시기인 9월 초 고온과 가을장마로 인해 정작 개막식에는 꽃이 거의 피지도 않았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더니 일주일 늦게 만발했다. 기후변화라고 걱정했는데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붕괴요 기후 실종인가 보다.

늦게 핀 국화꽃 향기와 자태 덕택에 골목길이 환해졌다. 대나무에 키운 현애국을 보며 “와~ 국화꽃 나무다.”고 했다. 요양원 노인들은 자주 찾아와 “꽃향기 맡게 해줘 고맙다” “예쁜 꽃 보여줘 감사합니다” 등 고마운 인삿말을 남겼다. ‘꽃채운국화전시장’은 구례읍 골목길 주민들의 정원이요 꽃 놀이터가 됐다.

기상예보와 달리 구름 사이로 한 조각 햇빛이 마음을 움직인다. 잠시 망중한을 누리고 싶다. 마음을 먹으니 몸이 움직이고 천은사 ‘상생의 길’로 향했다. 수홍루에서 바라보는 천은제는 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 언제 와도 좋다. 수홍루는 ‘미스터션샤인’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오색단풍에 취해 걷다 보니 차밭에 청초한 차꽃이 보인다. 역시 10월의 고온으로 차꽃이 늦게까지 피어있다. 덕분에 맑고 정갈한 향기를 맡게 됐다.

오감 중 후각이 몸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다. 차꽃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기다. 마음을 다스리는 특효약은 향기라 한다. 꽃은 언제나 향기를 풍기진 않는다. 필요할 때 자신만의 향기를 내어줄 뿐이다. 향기를 생산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기를 내는 이유는 벌과 나비를 불러 씨앗을 맺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오색단풍과 어울려 향기가 진하고 달다. 추워진다고 하니 차꽃도 곧 지겠지. 강풍은 견딜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차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성인데 괜한 걱정을 하고 있나 보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데 부질없는 기우이다.

차(茶)를 풀어보면 풀 초(艹)는 열을 두 번 더하니 이십이고 팔십(八十)에 팔(八)을 더하니 백팔번뇌를 잊게 해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기하다. 차를 마시지 않고도 차꽃을 보니 번뇌가 사그라들었다.

사람은 시각(눈) 87%, 청각(귀) 7%, 촉각(손) 3%, 후각(코) 2%, 미각(입) 1%로 오감의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눈으로 보는 색채와 풍광은 환희에 들뜨게 한다. 미술로 화가의 영역이다. 듣는 것은 마음을 위무하는 음악이다. 성악가, 가수의 영역이다. 촉각은 만지면서 느끼는 감성으로 진한 사랑이다. 코로 맡는 것은 마음을 다스린다. 향수 만드는 조향사의 영역이다. 미각은 입으로 들어가 혀에서 느끼는 맛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요리사의 영역이다.

낙락장송 사이로 장쾌하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향기가 교합 해오감이 즐겁다. 눈을 감고 바위에 걸쳐 앉으니 물소리는 우렁찬 동편제 소리다. 새소리는 추임새다. 나뭇가지로 바위를 툭툭 치며 만추의 여정에 빠져들었다. 향(香)은 ‘이향(耳香)’이라 쓰기도 한다.

향을 맡지 않고 들음으로 향 자체를 넘어 깨달음으로 도(道)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 적절하다.

오색단풍은 시간의 빛깔로 찾아왔다. 자연의 소리와 향기에 말이 필요 없었다. 침묵이 흐른다. 가을빛과 향기가 과거와 미래의 몽상을 통해 아름다운 구례의 매력을 만들고 기쁨이 돼준다.

화가 이불은 “향은 사라지만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이란 바로 자아 성찰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난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본다. 아쉬움과 회한이 아른거리고 고마움과 감사한 일들이 많다. 국화꽃을 함께 키운 회원들이 감사하다. ‘아름다운 원님’ 꽃향기 골목길을 만드는데 도와준 분들도 고맙다. 11월은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고 버리기엔 아까운 달이라 했던가. 가을 이 깊어 가고 성찰의 시간 역시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