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7개월의 ‘서울의 봄’은 왜 실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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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7개월의 ‘서울의 봄’은 왜 실패했을까.
김성수 감독 ‘서울의 봄’
  • 입력 : 2023. 11.26(일) 13:50
영화 ‘서울의 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는 곳이 있다. 대학생 얀 팔라흐가 소련의 침략을 저항하고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분신자살했던 추모의 장소라서다. 1968년 8월 소련이 무력으로 차단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는 7개월여의 짧은 ‘프라하의 봄’이었다. 우리에게도 ‘서울의 봄’이 있었다. 엄밀히 보면,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까지 7개월 정도라 할 수 있다. 유신 정권이 막을 내리고 온 국민이 민주화에 대한 희망의 봇물을 터트렸던 때였다.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을 쿠데타로 무너뜨린 점에서 서울과 프라하는 안타까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인 데다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로 몇 차례 접했던 내용임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대감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늘어난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건가. 아니면,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조차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일까. 필자의 기대감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감독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1979년 12월 12일을 끄집어냈다. 이날 신군부는 대한민국 정권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이들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사투는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9시간. 9시간은 한 인간의 권력욕과 그를 둘러싼 군상들의 떡고물 권력욕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협박, 욕망과 계산이 뒤엉키는 치졸함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를 대적하는 명분, 정당성, 군인정신이 고독한 대립각을 이루기에 길면서도 짧았고 짧으면서도 길었던 시간이었다.

12·12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데에는 몸 사리기에 급급한 국방부장관을 위시한 지휘체계의 우왕좌왕한 판단오류 등이 있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안타깝게 들여다보며 아픈 역사를 되돌릴 수 있었던 무수히 많은 기회와 선택의 순간들을 낱낱이 포착한다. 전체 역사의 향방이 바뀔 수 있는 순간들은 그래서 하나 하나가 극적으로 다가온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관객들이 숨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는 실제인물을 기반으로 하지만 배경의 틈을 약간의 상상력과 픽션으로 메웠다. 감독은 전두환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대립각을 보안사령관 전두광(배우 황정민)의 야비한 권력욕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배우 정우성)의 정당한 군인정신의 대비로 맞서게 했다. 전두광에게 편승하는 쪽에는 계산된 욕망과 보신의 세력이 늘어가는 반면 이태신은 점차 고독한 싸움으로 나아간다. 누가 봐도 지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외친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군인 하나는 있어야 한다.”

광화문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결연함이 한가득이다.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을 극중 ‘이태신’으로 명명한 것도 의도한 캐릭터였던 듯. 영화의 일등공신은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주역인 황정민은 천의 얼굴을 가진 천생 배우였고, 정우성의 내면연기 또한 탄탄했다. 무엇보다 조역들의 내공 있는 연기력이 훌륭하게 뒷받침하고 있어서 조화로웠다. 배경이며 소품 등 어느 신 하나에도 1979년 12월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래서 관객은 1979년 12월 12일 그때 그곳에 함께할 수 있었다.

영화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2·12 군사반란의 성공과 그 결과로서 1980년의 5·18광주항쟁의 비극을 알리며 끝을 맺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신군부 세력이 삼켜버린 그 정권이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불러왔는 가를. 당시 서울 시민들은 어디에서 폭죽놀이를 했나 하는 정도의 짐작만 오갔을 뿐 사실을 몰랐다. 군부정권이 물러가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역사의 크나큰 결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데에는 정보통신망을 거머쥐고 있어서였다.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제5공화국은 전대미문의 언론악법을 만들었다. 1도 1신문사 제한, 1민영방송사 제한, 방송·출판·간행물 검열제, 방송광고의 일정지분을 빼앗는 KOBACO 설립 등 언론의 암흑기를 가져왔던 것이다.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주동자들의 단체사진을 재현하며 다시 역사를 진하게 비춘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완용의 후손이 이완용 묘소의 표지석을 내팽개쳐 놓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또 흘러가는 것이다. (2023년 11월 22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