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하정호>내 맘 속의 분리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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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교육의 창·하정호>내 맘 속의 분리장벽
하정호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설립추진단 과장
  • 입력 : 2023. 11.26(일) 14:22
하정호 추진단 과장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난 지 46일 만에 나흘 간의 교전 중단과 인질석방이 이뤄졌다. 하지만 수감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인질과 맞교환 방식으로 풀려난 뒤에도 여전히 ‘세계 최대의 감옥’인 가지지구에서 살아야 한다. 이번 전쟁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분리장벽을 넘어 200명의 인질을 납치하면서 촉발됐다. 2002년부터 국경을 따라 분리장벽이 세워진 뒤 여기에 돌을 던진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에게 끌려갔다. 그렇다면 그 바깥에서 분리장벽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아이들은 어땠을까. 갈란트 국방장관이 ‘하마스는 인간동물(Human Animal)’이라고 떠벌릴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극우 민족주의자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분리장벽은 감옥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위안이 된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타주의에서 벗어나기 쉬운 조건(easy escape)을 만들어준다. 캔자스대학 명예교수인 대니얼 뱃슨은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타인의 불행을 피하려는 이기심 때문인지, 그 고통에 공감한 이타심 때문인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전기자극에 고통받는 사람을 CCTV로 보여주며 그 사람 대신 실험을 당할 생각이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물어봤는데 대신할 뜻이 없을 경우 절반에 그 연구를 지켜봐야 한다는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그냥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학생들은 어떻게 했을까. 개인적인 괴로움을 호소한 학생들은 벗어나기 쉬운 조건일 때 어려운 조건일 때보다 대신 고통 받겠다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공감에 따른 염려를 느낀 참가자들은 그 조건에서 벗어나기가 쉽든 어렵든 전기자극을 대신 받겠다는 비율이 높았다. 장벽 바깥에서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이타주의에서 벗어나기 쉬운 조건에 있다. 하지만 그들도 팔레스타인인들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이타심이 생겨날 것이다.

분리장벽이라는 ‘벗어나기 쉬운 조건’만으로는 인간의 이타심까지 가두어둘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을 ‘인간동물’이나 ‘괴물’로 보게 한다. 맘속의 분리장벽이 눈에 보이는 장벽보다 더 깊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눈을 돌려 오늘날의 우리를 바라보자. 우리에게는 그런 시선과 분리장벽이 없을까. 서이초와 주호민 사건을 거치며 “장애가 가장 경한 아이는 일반 학급에 배치되고, 그 다음으로 조금 중한 아이는 특수 학급에 배치되며, 문제 행동이 심한 아이는 대안학교로 보내지고, 장애가 가장 중하고 의학적 치료까지 필요한 아이는 특수학교로 보내지는 식”이라는 글을 보았다. 그러한 분리조치가 다수의 일반 학생과 대상자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편리와 효율을 위한 일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 장애인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학교 밖 청소년들은 버림받은 상처에 떠돈다. 코로나 이후 대안학교 교사들은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심리정서 문제에 대해 하나씩 어렵게 배워가는 중이다. 정신과 치료는 몇 달씩 밀려 있고 학교에서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1896년에 아동복지법을 처음으로 제정한 노르웨이에서는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을 포용하는 하나의 학교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분리보다 통합(Integration)이 더 낫지만 통합보다 포용(Inclusion)이 필요하다. 1994년 유네스코에서는 ‘살라망카 선언’을 통해 포용교육을 이렇게 정의했다.

포용적인 학교의 근본 원칙은 모든 아이들이 보이는 어려움이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함께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포용적인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며 서로 다른 학습 스타일과 속도를 수용하고 적절한 교육과정, 체계적 배치, 교수 전략, 자원 활용,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모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해야 한다. 각 학교에서 직면하는 학생들의 특별한 교육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 지속적인 지원과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UNESCO, 1994)

우리의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이 조항을 더 능력 있는 자가 더 많은 교육기회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읽으면 어떤가. 그것이 롤스가 말한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 원칙에도 맞는 일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게 되는 게 궁극 목적이라면 불행한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의 고통을 대신하고, 그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지만 그 십자가를 혼자만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다른 사람을 함께 보살필 때에만 생기기 때문이다. ‘혁신적 포용교육’을 표방한 광주시교육청에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