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정원·임효경>17세 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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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정원·임효경>17세 한 아이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3. 12.06(수) 12:48
임효경 교장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3월 2일 입학식과 개학식을 마치고 교장실로 찾아왔다. 수줍은 듯, 그러나 작심한 듯 ‘교장선생님, 저는 3학년 김00인데요. 교장선생님 말씀 듣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 아이의 마음을 열게 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 이렇게 찾아 와 말을 건네는 중학생이라니, 참 대견하고 또 신기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 또 한번 날 놀라게 했다. ‘완도중이 내 세상’이라는 상장을 만들어서 내게 주었다. 그 내용에 ‘완도중에 부임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신 것에 감사하여~~’ 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보고와 최경주를 이어서 완도를 빛내 줄 위대한 인물이 이제 나올 때가 되었다.’라고 취임사를 했었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로 유튜버로서 활약하는 청년 이야기도 했었다. 어찌하였든 17살 한 아이의 여린 마음 밭에 한 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좋은 일이다.

스승의 날 이 아이는 나 뿐 아니라, 20여 명의 교사들 모두에게 표창장을 만들어 감사를 표했다. 프로젝트 수업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카리스마와 수업의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에게는 ‘나의 우상’이라고, 또 보건 선생님에게는 ‘자(孶 부지런할 자) 유(愈 병나을 유)의 여신상’을, 미모로 인기가 많은 선생님에게는 ‘넋 놓고 감상’을, 교감선생님께는 곧 교장이 되시라고 ‘왕이 될 상’을 수여했다. 그 아이디어와 발상이 기발하여 깜짝 놀랐다.

이 한 아이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먼저, 부모님이다. 아버지는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초등학교 시절에는 자유롭게 체험하도록 방목하셨는데, 그것이 스스로 깨닫는 기쁨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어머니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독서를 생활화하시는 분으로 지역에서 유명하다. 학교 도서관 자원봉사에 앞장서고 계시면서, 아들이 성장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려 하지,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 모습이 참 특별한 분이다. 그런 부모님이 계시니 이 아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치를 찾아내고, 기꺼이 그 상황을 누릴 것이며, 고통과 어려움이라면 이겨내면서 또 다른 성취를 느낄 것이다.

두 번째, 선생님이다. 중학교에 들어오니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학업 기술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꼈다. 마침 임용고시 출신 젊고 유능한 선생님들의 열정이 이 아이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필요없는 배움은 이 세상에 없는데, 특히 전문가들이 검증을 한 학교 교육과정 내용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역량을 길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학교 선생님들을 무조건 신뢰하였다. 선생님들도 기특하여 더 열심히 가르쳤다. 학습 플래너를 작성하고, 수업 중 궁금한 것은 질문하면서, 학원의 도움 없이 자기 주도적 학습을 했다. 도서관에서 나오면 별도 보고 달도 보았던 날들이 많아졌다, 학년말에는 특히 어려워했던 수학에서 성적 우수자가 되어 표창을 받고 눈물이 났다. 3학년이 되니 자타가 인정하는 상위 1%였다.

올해에 이 아이는 청소년 참여 수업에 관심이 많은 사회과 선생님을 만났다. 지역사회 군청과 협업하여 정책 제안을 하는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선생님의 열정을 뛰어넘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변화가 필요한 지역사회 공공기관의 활용을 당당하게 발표하면서 군수님도 깜짝 놀라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친구들이다. 이 아이는 완도중 스포츠 클럽 축구부 주전 공격수로 뛰면서, 혼자 잘 하려 하지 않고 친구들을 격려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친구에게 공을 넘겨 주면서 확실한 득점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 교육감배 스포츠 클럽 축구 대항전에서 우리 학교가 우승하여 전남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이 아이는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 반 친구들에게도 공유하면서 혼자만 잘하려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잘하려고 했다. 수업 시간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반 전체의 면학 분위기를 살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같은 반의 평균 학력이 향상되었다. 이 아이의 그런 점을 친구들이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이 사춘기 시절에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가히 가장 소중한 재산일 것이다.

17살 이 여리고 약한 싹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더욱 푸르고, 강하게 자라나가길 바란다. 해상의 왕자 장보고처럼, 필드의 제왕 최경주처럼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또 다른 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길 온 마음으로 깃발 흔들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