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황제 나폴레옹… 그도 결국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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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황제 나폴레옹… 그도 결국 사람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 ‘나폴레옹’
  • 입력 : 2023. 12.10(일) 14:06
영화 나폴레옹. 소니 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소니 픽쳐스 제공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던 당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민들이 먹을 빵이 없어서 시위를 한다는 얘기를 듣자 “그럼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는 당시의 봉건주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프랑스혁명으로 봉건적 전제정권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마련한 프랑스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 선언)을 발표하며 민중들의 정치적 동원으로 제1공화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내적으로 왕권을 복원하려는 왕정파 등의 반혁명 세력들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내전을 치러야 했고, 대외적으로는 자국으로 혁명이 전파될 것을 두려워한 오스트리아 왕국, 프로이센 왕국의 공격을 받아 전쟁을 치러야 했다.

1793년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혁명정부는 독재·공포정치를 통해 안정을 도모한다. 그러나 이듬해인 1794년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의회에 의해 처형된다. 그 결과, 의회는 1인독재를 막기 위해 5인 총재단 정부를 구성했고 삼권분립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끊임없는 대내·외적 전쟁은 군대의 지위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나폴레옹이 있었다.

영화 ‘나폴레옹’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1793년부터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22년 동안 격변의 프랑스 근대사를 죽 열거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나열은 프랑스혁명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분간이 잘 안 되고, 역사적 배경지식이 있는 경우에도 지루함을 동반하리만큼 분절된 화면이라 영화로부터 얻는 드라마틱한 설득력은 없었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 데이비드 스카르파는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이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으로서 또는 정복자로서 그 면모에 걸맞는 동기 및 욕망, 내면에 대한 통찰력 등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간 배경과 경위, 왜 특정조약을 체결했는지, 전투의 당위성 등등의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있는 이 불명확함은 결과만의 나열이라는 인상을 주어, 관심 및 몰입감이 떨어지고 공감을 발효하기가 어려웠다. 스콧 감독이 4시간30분짜리 감독판을 따로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건의 연대기적 열거와 불명확함 속에서 감독은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 진전을 두드러지게 다루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을 빠트린 듯한 공백감에 객석에 미치는 감명이 필자에게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스펙터클한 전쟁 신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전쟁 신에 동원된 수많은 엑스트라들, 100여 마리의 말 등등 2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답게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는 여느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대포로 깨부순 얼음 속으로의 침몰 신은 관람 후까지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쟁술, 리더십, 정복자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그의 어록은 모르는 이가 없다. 나폴레옹을 다룬 출판물은 8만여 권에 이른다. 그에 관한 관심이 세기를 넘나들며 꾸준히 지속되어서이다.

유럽 여러 나라의 국립 갤러리에서 만나본 작품 속 나폴레옹은 퍽이나 영웅다웠다. 그는 당시의 시각매체인 그림을 통해 본인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PR방식을 알았던 것이다. 또한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작가 지망생이었던 이력은 병사들을 설득하는 표현력의 귀재였고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영화 ‘나폴레옹’은 기존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각도로 인물 나폴레옹을 조명했다. 그는 아내 조세핀의 불륜 소식에 전장을 버리고 귀국하는 행동에다 ‘조세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의존적 이미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쿠데타 장면마저도 동생에게 등 떠밀려 이루는 우스꽝스러움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아무리 영웅이라 신격화해도 ‘나랑 비슷한 사람’일 뿐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폴레옹이 사망 직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에는 ‘France, Army, Josephine’이 씌어져 있다. 그의 인생의 키워드는 이 세 단어로 압축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