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미소로 다독여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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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미소로 다독여주는 영화
육상효 감독 ‘3일의 휴가’
  • 입력 : 2023. 12.17(일) 14:17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 포스터. ㈜쇼박스 제공
‘내가 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나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어 할까…’ 영화 ‘3일의 휴가’ 시나리오는 유영아 작가의 이런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백일장 입상을 한 복자(배우 김해숙)는 하늘에 오른 지 3년 만에 이승을 방문할 수 있는 특별휴가를 받는다. 저승사자 또는 천사라 할 수 있는 가이드(배우 강기영)의 도움으로 그토록 보고 싶은 딸을 찾아보기로 한다. 미국 UCLA 교수인 딸 진주(배우 신민아)를 3일 동안 지켜볼 수 있다니,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 캘리포니아 우크라인가 하는 데에 갈 줄로 기대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복자와 가이드는 시골집에 도착한다. 시골집은 ‘백반집’이라는 간판을 예전처럼 매달고 있다. 뭔가 잘못됐다 하는 참인데 방문을 열고 진주가 나온다. 진주는 심지어 손님에게 스팸 김치찌개를 만들어 판다. 복자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본인이 귀신 입장인지라 소통할 수 없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백반집 때문에 골프장이 들어서지 못하는 건지 진주를 쫓아내려 피켓을 들고 모여든 동네 어른들. 진주는 개의치 않고 국수를 말아 대접한다. 동네사람들은 맛있는 국수 앞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네 엄마보다 낫다.”라는 평과 함께.

엄마가 만들어주던 만두 맛을 찾아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웃에 사는 엄마의 오랜 친구 춘분으로부터 “늬 엄마는 진주가 매운 걸 못 먹어 무를 넣는다.”는 얘기를 듣고 드디어 엄마의 맛을 찾는다. 그러면 무엇 하랴. 엄마가 살던 집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고 엄마만의 레시피를 찾아가며 그리워해봐야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는 것을. 진주는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독하고 못되게 굴었던 자신의 행적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밖으로 튀어나와 포효한다. 진주에게 그리움과 원망이 뒤얽힌 엄마는 풀 수 없는 난제다. 풀고 싶어도 이제 풀 수가 없는 절망감이다. 그래서 더욱 수학 문제에 매달린다. 정답이 있는 수학은 반드시 풀리니까.

영화를 보다 문득 ‘H마트에서 울다’(2022)라는 책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인디 팝 밴드 활동을 하는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미셸 자우너가 쓴 에세이집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녀는 엄마를 암으로 잃었다.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세상과 나를 잇는 연결 끈이 사라진 것과도 같은 마음의 무너짐이 일었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및 회한을 달랠 길 없던 미셸은 어느날 문득 한국 식재료를 파는 한아름(H) 마트를 가본다. 그곳에서 장을 보고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보다가 엄마와의 연결을 느끼는 새로운 감회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 책이 아니라도 어머니 얘기를 할라치면 웬만한 사람 대부분은 속절없이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누르면서 하게 된다. 어머니란 존재는… 신이 모든 이를 다 보살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내주었다 했다던가. 쉘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1964)의 바로 그 나무와도 같다.

영화 ‘3일의 휴가’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안도의 미소로 다독여주는 ‘드라마 치유’와도 같은 귀결을 보여준다. 독서 치료, 음악 치료, 미술 치료처럼.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몇 곳에서 났다. ‘살아 계실 적에 부모에게 잘해야지,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늦는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는 어른들의 말을 화면에 간접적으로 옮겨놓아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그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영화 ‘3일의 휴가’는 울고 있는 관객의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복자가 남긴 노트의 글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내가 니를 이자뿌러도 니가 날 찾아도.’ 먹먹한 한편 따사로운 기운을 주는 영화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