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이기언>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배우고 일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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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이기언>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배우고 일할 권리
이기언 광주광역시교육연구정보원 연구원·교육학박사
  • 입력 : 2023. 12.18(월) 13:25
이기언 연구원
우리나라 헌법 제3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라는 단어는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해석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은 보장받고 있는가?

얼마 전 비움박물관에서 진행된 ‘실개천 인문학 이야기마당’에 참여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노들장애학궁리소 고병권 철학자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여러 이야기들 중 필자는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라고 불리는 서울형 중증장애인 맞춤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화폐를 얻기 위한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일컫는다. 여기서 노동은 이윤이 발생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 돈을 벌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다면 장애인 중 이윤이 발생하는 노동이 가능한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장애인의 노동은 보편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노동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이 경제적 활동으로서 재화(돈)와 교환되는 수준에서만 인정가능하다고 한다면 여성들의 가사노동이나 가족 안에서의 돌봄은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서울시에서 선도적으로 추진되었던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노동의 가치를 다시 정의하도록 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증장애인의 활동이 생산적으로 재화를 벌어들이는 것과 상관이 없더라도 그들이 갇혀있지 않고 사회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그 행위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함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서울에서 260명의 일자리로 시작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2022년에는 서울·경기, 전남·북, 경남, 강원, 춘천 등의 지역에서 총 650여 개의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개선, 문화예술 등 세 가지 직무로 구성되어 있고, 이와 관련한 중증장애인들의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 받았다. 중증장애인들의 활동이 비장애인들에게는 이상한 몸짓과 소리로 보여지더라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로 인정받음으로써 이들이 꾸준히 사회로 나와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지원이자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2024년 서울의 260명의 일자리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고, 다른 지역의 예산도 점차 축소될 것이라 예상된다.

노동의 가치를 경제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의 가치에 대한 관점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노동의 결과로 재화 획득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처럼 교육의 가치를 투입 시간이나 비용 대비 성과(학업 성취도)로만 판단하는 것은 교육이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인간이 수단화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노동에 앞서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인식 재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교육에서 효율성을 핑계로 비장애인과의 차별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장애학생은 늘어나는데 특수교사나 특수학급, 특수학교는 늘지 않고 있다. 장애학생이 특수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비장애학생이 소위 SKY라 불리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다행히 특수학교에 입학하더라도 통학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독일 나치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가진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에게는 피상적인 인식 개선이 아닌 장애인과 함께 활동하고 실천함으로써 인식 개선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사회적 인식 전환이 가능할 때 장애인이 차별없이 일할 권리를 보장받고,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