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이미경>한 해의 끝자락, 행복하게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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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이미경>한 해의 끝자락, 행복하게 보냅시다
이미경 전 광주광역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협의회장
  • 입력 : 2023. 12.20(수) 08:39
이미경 전 협의회장
“엄마 보고 싶어요.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딸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수업시간이랑 아르바이트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통화가 잘 안되어 걱정만 하고 있던 차에 반가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오야 오야 잘있지? 별일없고? 학교는 잘 다니고? 아프지는 않고?…”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아이는 걱정 말라며 웃는다. 학교도 잘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해서 돈도 잘 모으고 있단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서 친구랑 저녁 먹으면서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한다.

“장하다 내 딸! 사랑해!”를 몇 번 외치고 가슴 벅차오름을 감출 수 없었다. 중3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고 충격으로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등으로 힘들게 입학한 특목고를 그만두고 학교밖청소년이 됐다. 힘든시간을 이겨내려고 나름 노력하였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 좌절하고 방황하던 아이가 건강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2년전 내 차에 짐을 싫고 새로운 곳을 향해 가면서 쫑알쫑알 대는 아이에게 잔소리 마왕처럼 굴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걱정 말라고 잘 해낼 수 있다던 아이는 1학년 중간고사를 마치고 힘들어서 휴학을 선택했다. 조금 쉬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기르고 싶다고 하는데 혹여라도 포기할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올해 열심히 노력하여 학년을 마치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데 아르바이트한 돈을 잘 모았다고 내게 뭔가 보내고 싶다고 한다. 영양제가 필요할 시기인 것 같다고 하는 아이에게 극구 사양하다가 아침에 로션이 바닥났는데 그럼 하나 사주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폰으로 선물이 왔다. 주름안생기고 생기 돋는 로션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이런 기분일까. 생의 끝자락에서 만난 아이가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한데 사랑한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건강하시라고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났다. 엄마로 선생님으로 아이를 지켜 주리라 다짐하면서 그날 밤 행복에 젖었다.

박사과정 때 만난 지도교수가 재활의학과 교수였는데 어떤 분야의 의사들 보다 기다림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이 각고의 노력 끝에 조금씩 펴져서 기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작은 성취에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달에는 남구지역아동센터연합회 주최로 재능발표회가 있었다. 총감독을 맡아서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게 하기위해 하나하나 체크하고 만들어 가는 센터장님들이 존경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간디학교 교가를 합창으로 들려주기 위해 연습하고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노래하였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아이들이 꿈을 꾸게 하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우리가 더 노력하여야 하겠다.

어느새 2023년이 지나가고 있다. 정신없이 살면서 한해를 돌아보며 아쉬운 시간들, 행복했던 시간들, 충만했던 시간들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2월에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의 시간들도 이제는 웃으며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잘 치료하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새로 만난 인연들과 행복한 추억 쌓기도 의미 있었다. 소중한 만남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하겠다는 생각이다.

엊그제는 여고동창들 송년회가 있었다. 언제 만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깔깔깔 웃고 떠들게 만드는 그녀들은 노래잘하는 친구들이 40여년전에 수업시간에 불러줬던 노래를 부르기를 원한다. ‘홍콩아가씨’를 여전히 1번 시작곡으로 불러 제끼는 친구는 교장이 됐다. 다양한 모임에서 송년회를 하면서 이렇게 1년이 마무리 되는구나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30년 넘게 매년 1월1일이 되면 다이어리에 계획표를 작성했다. 어김없이 1번은 다이어트 성공이었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계획 앞에 반성하면서 내년에는 1번이 건강, 2번이 행복, 3번이 사랑나눔으로 정해야겠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고 행복을 나누는 그런 한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꼬물 꼬물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데 곁에서 한없이 지켜줘야 하니까. 우리모두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또 힘찬 한해를 맞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