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교문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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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교문맞이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3. 12.20(수) 12:36
임효경 교장
기말고사 두 번째 날 오후 따스한 겨울 볕에 해바라기라도 할까 하고 나온 운동장이 조용하다. 삼삼오오 공을 차거나, 농구대 주변에서 공을 던지거나, 친구들 놀리고 달아나거나 하며 왁자지껄 시끄러워야 할 운동장이 썰렁하다. 역시, 학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고객들이 없는 학교는 유쾌하지 않다. 그들은 물론 불평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고, 골치 아플 때도 많지만, 그들이 없으면 우리 학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8시, 별일이 없는 한 난 교감선생님, 그리고 그날의 당번 선생님과 함께 교문맞이를 한다. 여름이라 뜨겁다고, 더워서 아침부터 땀으로 범벅된다고, 햇볕에 얼굴 그을린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겨울이라 찬 바람이 매섭다고 해서 난 포기하지 않는다. ‘어서 와’ ‘화이팅!!‘ 웃는 얼굴로 학생들 맞이하는 보람과 기쁨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교문을 쏜살처럼 뛰어 교실로 직진하는 우주랑 하이 파이브를 한 날은 내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오늘은 무엇이 바쁜지 그냥 지나갔다. 난 시무룩해졌다.

나는 교문 앞에서 본다. 한 아이마다 깃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오는 것을. 3월에 새싹처럼 귀여운 신입생들은 단정한 사복 차림과 갓 자른 듯한 머리, 그리고 수줍은 눈빛으로 금방 눈에 뜨인다. 초등학생의 면모를 미처 벗지 못한 어린 신입생들은 약간 긴장을 한 듯하다. 교문에 들어서면서 교문맞이를 하는 선생님들을 향해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가, 이내 수줍음을 내비치며 눈빛을 내린다.

또한 이제 학교에서 큰형이 된 3학년들이 학생자치회 선도부원으로 교문을 지키며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 단속, 지각 단속을 하는데, 제법 틀이 잡힌 모습이 든든하다. 어깨에 힘을 주고 짐짓 멋짐을 뽐내려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나는 안다. 5월처럼 가정의 달이 되면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10월 초 가족과 함께 보낸 긴 휴일 후 어떤 아이들의 어깨가 더 처져있다는 것을. 어떤 학생들은 차라리 학교에 오는 것이 집에서 홀대받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휴일이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슬퍼서 우울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기억한다. 내가 13살일 때 5월 5일, 쓸쓸했던 그날을. 어린이날이라 하지만 선물 하나 받지 못해 혼자 징징거리다 단층집 옥상에 올라갔다. 여름날 밤이면 별을 바라보고 멍때리곤 했던 나만의 공간이었다. 5월 햇살이 뜨거웠다. 커다랗고 동그란 흙색 플라스틱 통 속에 들어가 또 징징거리다 잠이 들었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천지는 어두운 사위로 둘러쳐 있었다. 그때까지 나를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난 철이 들어 버렸다. 아, 삶이란 외로운 것이구나. 우리 집은 모두 나에겐 관심이 없구나. 슬펐다.

그런 나에게 학교는 신기하고 다정한 세계였다. 학교는 쓸쓸하지 않았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있어서 즐거웠고, 말 잘 듣고, 순종하니 칭찬해 주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특히 중학생이 되었을 때, 선생님을 사모하며 사춘기를 넘겼다. 그때는 모두 가난했다. 아주 가난하거나, 조금 가난했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표가 나지 않았다. 교복을 입었고, 모두 단발머리였으니까. 그리고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을 때이니 남들의 가정 사정을 소소히 알 수 없었다. 방학이 되면 모두 방학 일기를 쓰고, 방학 숙제를 했다. 고전문학이나 세계문학 독서록을 제출해야 했다. 난 동네 친구 집에 가득한 세계문학전집이 욕심나서 부지런히 빌려다 읽었는데, 그것으로 칭찬을 들었다. 네모 반듯한 책상과 걸상처럼 공정하고 올바른 세상, 학교는 나의 희망이었다.

이제 세월은 흘러, 내가 선생님이 되었고, 교장이 되었다. 그때 그 시절 부모님이 어린 딸 선물 하나 살갑게 챙겨주지 못한 것은 그만큼 바쁘고 신산한 인생을 사셨다는 것을 이제 안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다. 그분들은 가시고, 내게 학생들이 온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나에게 꿈과 안식처가 되어주신 선생님들처럼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부서지기 쉽고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을 읽어주는 바람같이 우리 아이들 등굣길 교문 앞에서부터 환대를 해 주고 싶은 것이다. 학교는 우리 모두에게 벅찬 삶이고 희망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