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김남주>고향 후배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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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김남주>고향 후배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김남주 전 서울 SH공사 노원센터장
  • 입력 : 2023. 12.21(목) 12:38
김남주 전 센터장
2023.12.9.토요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토요일의 짜인 시간표대로 일정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아내의 승용차 타이어 교체, 엔진오일 교체, 세차 그리고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좋지 않아 통증클리닉을 방문해 DNA 연골주사를 맞았다. 늘 토요일은 일주일 동안 하지 못했던 일상의 일들을 시간표에 맞춰 아주 바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세차를 위해 세차장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휴대 전화벨이 울렸다. 곧장 받을 수 없어 세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신 전화를 확인해 보니 고향 초등학교 여자동창생의 전화였다. 전화야 서로 알고 있으니 할 수는 있지만 자주 통화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하는 직감으로 곧장 전화를 해보았다. 키패드를 누르면서도 아무래도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면 그 여자 동창은 내 고향 동네 3년 후배이면서 내가 친동생 이상으로 아끼며 사랑해주는 “모모”의 누나이기도 해서 혹시 “모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이 든 것이다. “모모”는 그동안 희소질환을 앓고 있었고 치료도 되지 않는다고 나에게 토로하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나의 직감은 적중했고 그 여자 동창은 전화기 속 목소리가 울먹이며 “남주야, 모모 갔다.”

“모모”는 광주에 거주했다. 토요일 저녁 식사 모임, 일요일 점심 모임, 저녁 식사 모임까지 세 개의 주말 일정이 앞으로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지? 하며 그래도 후배의 상가방문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일정을 뒤로 한 채 철도예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승용차를 이용해서 광주를 다녀오기는 너무 막히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KTX 기차 예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토요일 모든 열차 매진, 순간 어떡하지? 하면서 아, 일요일 첫차를 알아봤다. 다행히 새벽 5시 7분 차가 있었다. 이제 광주에서 서울 올라오는 왕복 열차를 검색했다. 오전 10시 이후에는 모두 매진. 겨우 오전 9시 44분 열차가 3자리 있어서 재빨리 예매하였다. 새벽 5시 7분 열차는 광주 송정역에 7시 5분 도착, 용산행 서울 열차는 9시 44분 송정역 출발 11시 36분에 용산역 도착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도착해서 장례식장까지 가는데 왕복 1시간, 장례식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하다는 계산으로 토요일 저녁 식사 모임, 일요일 점심 및 저녁 식사 모임까지도 가능하다는 시간 계산이 나왔다.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가 마지막 나하고의 시간인데 겨우 1시간 장례식장에 머무르다 영영 작별을 고하고 온다고 생각하니 정말 내가 미워졌다. 하지만 기차가 모두 팔리고 겨우 그것도 예매했음을 합리화시키며 나를 위로했다.

사랑하는 후배는 이제 영정 속 얼굴만으로 나를 대했다. 대답도 없었다. 인생의 생과 사가 이런 것인 줄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고 덧없고 허탈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맘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속일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그 후배와 고향에서의 즐거웠던 일, 함께 운동하며 땀방울을 훔쳤던 일, 오월에는 기타를 메고 보리밭길을 거닐며 함께 노래했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고 있었다. “모모야 잘 가거라, 고통도 아픔도 없는 하늘에서 잘살아가라.”라고 속으로 기도를 하며 분향을 마치고 함께 간 다른 고향 후배와 “모모”의 누나들과 “모모”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주어진 시간을 보내다 다시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인생이란 무언가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찰나에 생과 사가 나뉘는데 우리 인생은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목숨까지 걸고 있는 모습들을 볼 때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저세상으로 돌아가면서 손바닥에 10원짜리 한 장 쥐고 갈 수 없는 인생임을 생각할 때 정말 부질없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그리 살지 않아야지 각오를 다지지만 글쎄 얼마나 그 각오가 갈지…….

성서 속 전도서에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욕심, 명예, 돈, 지위, 학벌, 큰 평수의 아파트 등 모든 것이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이웃들에게 여유를 갖자, 사랑을 베풀자, 못했던 용서를 하자. 이제 연말이다. 추워지는 겨울이기도 하다. 이럴 때 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도 한번 그 사랑의 손길에 동참해 보자.

그런 와중에 적십자회비 납부고지서가 우편으로 왔다. 일정액을 지정해서 왔다. 얼른 집어들고 알린 액수보다 두 배를 은행 입금했다. 그리고 초고속으로 광주를 다녀온 후 저녁 식사모임에서 나의 의미 있는 제안으로 회비를 갹출해서 먹고 마시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외식보다 가정을 방문해서 식사하고 모임 시마다 갹출했던 회비는 1년 동안 적립해서 내년 말 이맘때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기분이 뿌듯했다. 후배의 죽음으로 잠시나마 인생을 돌아보고 의미 있는 작은 일을 실천하기로 계획하여 올해 말은 예년보다 마음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