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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요란하지 않게 차근차근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3. 12.25(월) 14:15
정상연 교수
벌써 12월 말이다. 이제 2023년도 며 칠만 남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올해도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오늘의 최선이 내일의 행복을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아침부터 밤늦도록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절대 없다.’라는 진리는 우리를 시계 문자판에 기대어 걷고 또 달리게 했다. 진짜로 하늘 한 번 쳐다볼 틈도 없이.

한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이 되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 같은 생각에 시간의 흐름을 재촉한 적도 있었다. 더딘 시간을 채근한 것이다. 실러(F. Schiller, 1759~1805)는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온다고 했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시간을 사유화할 수 있도록 주체자로서의 역할과 그로 인한 구체적인 일들에 편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사람들은 늘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맡겨진 일들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럴지라도 지금, 현재가 내게 맡겨진 최고의 순간이며 이 시간이 나의 존재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질지라도 결국 오늘이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의 주인이 됐다는 것이다. 흐르는 초·분침을 나름의 방법으로 붙잡고 목적하고 정해진 방향으로 묵묵히 구도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자기만의 철학으로 세상을 향해.

오래전 남태평양의 머나먼 섬, 타히티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지나간 흔적을 더듬는 이가 있었다. 그는 건강악화와 빈곤 등에 힘들어 하던 중 딸의 죽음을 전해 듣고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유작을 남기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걸작으로 남았다.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P. Gauguin, 1848~1903)이다. 이 작품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답을 찾기 위한 그만의 몸부림이었고 처절함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위해 늘 질문하고 답해 왔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도 음악가로 확고한 입지를 다질 무렵 청각장애를 앓게 된다. 그의 나이 30세 중반을 넘기면서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써 내려갔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 에 답하고 자신의 운명의 문을 두드렸다. ‘따다다 단! 따다다 단!’, 이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 <교향곡 제5번 c단조>, 일명 ‘운명 교향곡’이다.

희망의 등불로 여겼던 나폴레옹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어둠과 고난의 그림자가 그를 엄습했지만, 그 많은 시련과 고뇌를 쉼 없는 열정으로 그는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이 곡은 베토벤의 처절한 인생사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운명 교향곡’은 이 시대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한편의 서사가 아닌가 싶다.

신분에 대한 열등감과 청각장애, 가난 등의 이유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며 암울한 내적 고통을 새로운 희망의 예술 세계로 승화시켜 나간 것이다. 예술은 삶의 역사이자 삶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특히 삶에 있어 음악은 인생사 모든 것에 위로이며 감동이다. 음악은 시·공간을 반영하고 시대사상과 가치를 드러내며 영적인 위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겨울이 깊어간다. 2023년 마지막 한 주는 요란하지 않게 그리고 차근차근 나를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만의 힘을 비축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