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모두가 아는 역사… 그러나 누구도 몰랐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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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모두가 아는 역사… 그러나 누구도 몰랐던 이순신’
김한민 감독 ‘노량 : 죽음의 바다’
  • 입력 : 2023. 12.25(월) 14:14
‘노량 : 죽음의 바다’. 롯데컬처웍스 제공
‘노량 : 죽음의 바다’ 포스터. 롯데컬처웍스 제공
10년간 이순신 장군의 7년 해전을 영화에 담아온 김한민 감독. 그는 ‘명량’(2014), ‘한산 : 용의 출현’(2022)에 이어 ‘노량 : 죽음의 바다’로 마무리했다. 3부작의 마지막 편답게 전편에서 보여준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차용하여, 스펙터클한 전쟁 신과 영웅의 고뇌 등을 치우치지 않게 구성하는 등 김한민식 대하 드라마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의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1592~1596) 직후, 일본의 제2차 침입인 ‘정유재란’(1597~1598) 때다. 임란때 의병과 수군으로 침입하지 못한 곡창지대 전라도를 왜군은 집중 공략할 요량이었다. 결국 이순신 장군 없는 수군은 대패를 당하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국토가 철저히 유린을 당하였다. 여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자가 쓴 논문(2018 : 임진·정유재란기 약탈된 출판문화재에 관한 연구)의 일부를 옮겨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은 전공평가를 받기 위해 조선인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인 후 1000개씩 통에 넣어 일본에 보냈다. 당시 발급된 ‘코 수령증’과 교토 호코지에 있는 비총(코무덤)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교토에는 미미츠카(이총)도 있는데 이 역시 비총일 것으로 일본학자 吉田光邦는 유추한다. 5만에 달하는 코의 숫자 중 전라도 나주에서만 6006개의 코를 베어 보냈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 백성들의 고초가 얼마나 극심했을지 알 수 있다’ 이 대목을 쓰면서 필자는 가슴이 미어졌고 풀리지 않는 체증처럼 아직껏 가슴 한켠에 얹혀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초들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직급이 강등되어 백의종군중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이끈 수군은 1597년 4월 칠천량해전에서 전패를 당해 130척이던 배가 12척으로, 1만3000명이던 군사가 120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에, 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9월 명량해전으로 대승을 거두어 바다를 지키다 1598년 11월 퇴각중인 일본군에 맞서 노량해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헌에 의한 역사적 상식은 여기까지다.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는 그 상식을 뛰어넘어 어마어마한 현장감으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스크린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100분에 이르는 해상전투 신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시각 특수효과(vfx) 등 컴퓨터 그래픽으로 공을 들여 세계 어느 나라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규모의 동양색이 가득한 독보적인 액션물로 완성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동시에, 한 신 한 신을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꾸려냈는지가 보이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뛰어넘은 또 한 가지. 한·중·일 3국의 시각을 고루 담았다. 명군과 조선군, 왜군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전투 신을 통해, 이기고 지고의 문제보다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이 있었다. 더불어, 3국의 장수들이 보여주는 내공이 탄탄하게 틀을 이루고 있었다. 지장, 용장, 현장으로서의 이순신(배우 김윤석)이 갖춘 품격 연기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배우 정재영)의 유연한 풍모는 인간적이었고 부도독 등자룡(배우 허준호)의 장수로서의 정신은 올곧아 보였다. 왜군의 노장 시마즈 요시히로(배우 백윤식)의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이들의 내공연기는 주역 못지 않아 조화로웠다.

영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언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에게 어린 후계자를 부탁하는 순간, 도쿠가와의 반역을 깨닫는 도요토미. 그런가 하면 노량해전에서 시마즈는 본진이 위험에 처하자 자국의 선발대를 향해 포를 쏜다. 시마즈는 고니시(배우 이무생)의 부하를 징벌하고, 고니시는 시마즈를 돕지 않고 회군한다. 이는 마치 일본인들의 냉정하고도 비열한 정치적 전략적 속내로 채워진 대하소설 ‘대망’을 보는 듯했다. 이순신 장군을 위인전에서 꺼내어준 작가는 김훈이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2001)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영혼, 정신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 책이 영화를 만드는 원천 콘텐츠라면 영화는 다시 책을 부르기도 한다. 내일은 동네 도서관에서 ‘칼의 노래’를 찾아 봐야 겠다. (12월 20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