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이승현>올해의 단어, 정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아침을 열며·이승현>올해의 단어, 정원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 입력 : 2023. 12.27(수) 13:01
이승현 동주
백운동 원림에도 겨울이 왔다. 백운동 원림에는 취미선방, 수소실, 정선대 세 채의 초가집이 있는데 새 볏집으로 도톰하게 지붕을 덮으니 갈색의 지붕이 포근함을 주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보기 쉽지 않은 이엉잇기나 용마람 엮는 모습을 내내 구경하거나 과정을 동영상에 담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훈수도 둔다. 시멘트 빌딩이나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벼를 재배하는 농촌에서 조차도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정취다. 자칫 이 아름다운 전통 풍습조차도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겨울의 전령, 흰 눈이 소복이 내려 초가지붕은 이내 호빵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화해온 원림의 식물들은 몸통까지 사그라져 흙이 되고 바위들도 시들어 주름이 져 간다. 갈색의 시간, 비움의 계절이다.

지나간 초록의 시간을 돌이켜 보니 올해 가장 화려한 식물들의 향연이 벌어진 곳이 우리 지역에 있었다. 순천만 정원이다. 천 만 명 가까운 내장객을 기록했다고 하니 올 한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흥행한 도시라는 칭호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철마다 피워낸 화려한 꽃들도 볼거리지만 도시가 정원이고 정원이 도시가 되고자 하는 발상도 좋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았던 지역은 우주적 관점이 반영된 천국으로 가는 길, 나선형 언덕(Snail Mound)과 호수였다. 찰스 젱스(Charles Jncks)작품이다. 여러 번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찰스 젱스는 건축가였으나 그의 부인 메기 케스윅(Maggie Keswick)을 만나 본격적으로 정원설계를 하게 되었다. 매기 케스윅은 풍수의 개념을 전파하였던 동양 정원의 전문가로 <중국정원>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포트랙 하우스’의 정원을 조성하면서 죽기 전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본의 젠 형식, 불교, 도교등 동양정원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아이디어를 남편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아주 새로운 형태의 대지를 조성하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경에 접해 있는 포트랙 하우스라는 ‘우주적 사색의 정원’이다. 찰스 젱스는 자연의 근본을 우주로 보았는데 블랙홀등 우주에 관한 수많은 이론과 물리학 이론에 매기 케스윅의 바람과 물에 의해서 지형적 특징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중국의 정령신앙을 조화롭게 결합해서 세상에 없던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필자가 조경공부를 하면서 접한 마운드 앤 레이크(Mound and Lake) 나 블랙홀 테라스(Black hole Terrace) 지역을 보면 매기 케스윅의 풍수사상과 찰스 젱스의 카오스이론이 접목되어 이렇게도 정원을 조성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내는 감동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수 백 년 이어 온 풍경식 전통 정원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린 찰스 젱스는 ‘정원에서 식재가 중요시 되어 왔지만 정원의 출발점이 식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자연속에 과학, 인문학, 예술, 사회현상과 사상이 담기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몇 백 년 전 신선사상을 구현코자 조영한 백운동 원림과 맞닿아 있다.

울산 태화강에는 또 하나의 국가정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네델란드 출신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 피터 아우돌프(Piter Oudolf)가 조성하고 있다. 아우돌프는 ‘도심속 하늘공원’이라는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디자인한 거장이다. 버려진 철길을 풀 ,갈대, 야생화 가득한 산책로로 바꿨다. 매년 5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몇 년 전 직접 걸어보니 원래 있었던 숲길처럼 자연스러웠다. 그가 아시아에서 첫 작품으로 오랜 동료 바트후스(Bart Hoes)와 함께 태화강 국가정원을 조성했다. 아우돌프는 화려한 꽃에 치중하던 전통 가드닝 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고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고 식물의 탄생부터 성장과정, 쇠락과 죽음에 이르는 순환과 다양한 조화를 보여주는게 정원’이라고 말한다. 그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원의 유지보수다. 처음 울산시에서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때 항구적으로 유지보수가 담보될 것이 우선 조건이었다고 한다. 공공정원은 면적이 클수록 자원봉사자나 철저한 유지보수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흉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카고 루리 가든이나 영국 위슬리 가든 같이 20여년이 지났지만 그가 조성했던 정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러 다닌다고 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영국 하우저 앤드 워스 갤러리 정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의외로 겨울이라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쉼 없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꽃과 식물의 골격, 색감도 좋지만 생명의 마지막과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게 하는 ‘갈색의 시간’ ‘비움의 시간’이 영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정원에서는 일 년 동안에 이루어진다. 그러한 순환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이다. 올 한 해 수많은 꽃들의 축제와 더불어 한국의 국가정원 1호 순천만 정원과 2호 울산 태화강 정원의 조성과 국민적 관심은 국내 가드닝의 인식과 산업의 협착한 울타리를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정원이 꽃과 식물의 진열 행사나 며칠간의 축제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사람이 조화되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가 되길 바랬다. 조경분야(만드는 사람들)과 관광분야(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설계, 환경생태 분야, 농가등 연관 산업분야에 두루 성장의 기회와 모티브를 준 한 해였다. 그런 뜻에서 ‘정원’을 올해의 단어로 뽑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