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에세이·공옥동>이국땅 서독 간호사와의 아름다운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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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에세이·공옥동>이국땅 서독 간호사와의 아름다운 해후
공옥동 광주문협 상임부회장·사)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창립회장
  • 입력 : 2023. 12.28(목) 13:24
공옥동 상임부회장
독일에 사는 동서와 그 가족들이 왔다 한국 형제와 가족들이 보고 싶고 어릴 적 고향 언덕과 둠벙과 공동우물가 빨래터와 뒷산 다랭이논과 밭이 그립고 한국음식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 그 추억들을 찾아 짐을 꾸렸다 한다. 우리 집에서는 아침마다 바게트와 우유, 치즈, 과일, 베이컨슬라이스와 커피내림 등으로 함께하고, 나들이에는 어릴 적 가난해서 못 먹어본 팥죽 막국수 붕어빵 만두 김밥 비빔밥 등을 같이하며 저녁에는 김치와 생채 나물무침에 불고기와 와인을 곁들이며 창밖의 별과 달과 함께 서로의 지나온 삶을 나누었다.

처형은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부모와 오빠 동생들의 가족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파독 간호사로 서독으로 건너갔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는 전쟁의 피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가난한 나라였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는 것이 어려워지자 군사정부는 같은 분단국인 서독으로 눈을 돌렸다. 서독에 파견된 한국의 차관 교섭단은 1억 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 도입에 합의했다. 이때 서독 측이 제의한 것이 한국인 광부 5000명과 간호인력 2000명을 서독에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서독은 노동력 부족으로 해외에서 인력을 수입하고 있었다. 당시 취업이 어려웠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서독파견 간호사 모집에 중학교 졸업자 이상을 자격으로 했는데 대학교 졸업자가 20% 이상이었고, 2000명을 뽑는 첫 간호사 모집에는 2만 명이 응모했다.

파독 초기에 현지에서 언어와 낯선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당황스런 순간들에서부터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삶에 지쳐 귀국이냐 연장이냐를 고민했던 순간순간 엄습해 오던 고향 그리움 외로움과 고독을 그 누가 보상 할 수 있으리.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근면과 성실성으로 현지 업체와 병원의 인정을 받았고 이들이 아껴서 송금한 돈은 그들 가족과 외환이 부족한 고국의 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다

동서 가족은 32일 동안 머물며 순천 정원박람회, 하동 화개장터, 부산 감천마을 동백섬 해운대 해동용궁사, 경주 불국사, 서울 경복궁 등을 돌며 각 지역의 보물과 유적 음식문화 등을 함께 체험하며 가는 곳마다 축배를 하며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발전과정에 감탄을 자아내었고 멋스럽고 맛스럽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감동 감화 만족의 환성과 환호를 자아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야에 우리는 치맥을 제안하고 많은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건배, 축배, 짠 짠 짠으로 잔을 부딪치며 아쉬운 작별을 하였고, 그들은 제2의 고향 독일로 떠났다.

3일이 지났을까. 요란스러운 전화벨소리와 함께 동서와 처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사히 도착하였고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여행의 답을 전하며 광주 5·18 묘역의 숭고한 나라사랑, 부산 감천마을의 삶의 애환, 독일보다 더 잘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활상 등 값진 여행의 표적들을 이야기 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치맥으로 축배를 들던 순간도 인상 깊게 남는다 했다. 언제 어디서나 작은 일상 속에서 소소한 만남과 축하, 축배의 행복한 의미를 선물하는 파티라며.

이국땅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들은 조국에서 기대하는 가장으로의 삶과 근면과 성실성으로 현지 업체와 병원의 인정을 받아야 했고 이들이 아껴서 송금한 돈은 외환이 부족한 고국의 경제에 큰 보탬이 됐다. 간호사들은 대부분 고용계약이 연장되어 장기간 근무하면서 일부 간호사들은 한국인 광부들과 결혼하여 독일에 정주했고 독일인과 결혼한 여성도 많다. 파독 한국 간호사의 절반 이상은 독일에 계속 거주하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 이주노동자의 대다수는 루르 지역이나 라인란트 지역에 살고 있다. 이들은 독일 최대이자 서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 교민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멋지고 훌륭한 여성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처형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로운 이국땅에서 삶에 지쳐 귀국이냐 연장이냐를 고민했던 순간, 하지만 끝내 결혼을 통해 정착하면서 현재의 안정된 삶으로 이어지는 전반의 과정을 잘 견디어온 그 분과의 해후가 이리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한 해의 결실이 되어 가슴 한 켠에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