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고고 드렁큰 펭귄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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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고고 드렁큰 펭귄스 2024
김강 호남대 영어학과 교수
  • 입력 : 2024. 01.02(화) 13:34
김강 교수
한 해가 금세 저물었다. 15분이 3번의 가을과 같다는 ‘일각여삼추’라더니 나이가 여물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 2024년, 이제 검은 토끼의 기운이 걷히고 푸른 청룡의 운세가 상승할 찰나다.

연말이 다가오면 묵은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반기는 갖가지 행사들이 앞다퉈 열린다. 아마추어 수영인으로서 ‘해운대 북극곰 축제’는 압권이다. 매년 겨울 손꼽아 기다렸으며, 참가를 후회한 적 없었던 진짜로 신나고 재밌고 흥분됐던 플래티넘 이벤트다. 얼음이 꽁꽁 언 북극해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는 북극곰처럼 한겨울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축제행사다. 털모자와 장갑에 롱패딩을 입어도 살 떨리는 겨울 마당에 그 차디찬 바다에 자진해 들어간다니 어디 제정신이면 상상조차 어렵지 않겠는가.

매년 해운대에서 개최되는 북극곰 축제는 지난 12월 14일 36회째를 맞이했다. 부산일보가 주최하고 부산광역시와 해운대구가 공동후원하고 행사 진행은 부울경바다수영협회가 맡았다. 수년간 참가에서 체험한바, 이들 행사 주체 콤비는 오리지널 찰떡궁합에 비할 정도다. 36년간 버텨온 그들의 끈기도 존경스럽다. 사흘간에 걸친 전시, 전야, 본, 부대 행사 프로그램도 다양했고, 이벤트도 풍성했으며, 북극곰의 식욕을 돋우고 채워준 기념품과 경품도 알뜰하고 풍성했다. 영국 BBC 선정 세계 10대 이색 겨울 축제로서 특히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겨울 바다 입수를 노리는 북극곰들에게 부활과 재도전의 기회였다.

12월 15일 토요일 새벽 6시, 부산으로 동진했다. ‘드렁큰 펭귄스’(Drunken Penguins) 회원과 가족들이 동행했다. 토요코인 해운대 호텔에 체크인 후 곧장 행사장에 들어섰다. 2022년 입수취소의 서운함을 달래려는 듯 기세가 당당하다. 폭설이 몰아친다는 광주에 반해 해운대 날씨는 비교적 온화했다. 완전히 딴판인 동서기후에 한국이 그렇게나 넓은지 되물을 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제는 거친 파도였다. 1킬로 동행수영은 입출수가 어려운 탓에 애석하게도 취소됐고, 메인 행사 격인 북극곰 축제 입수는 가까스로 이뤄졌다. 그마저 감격스러웠다.

으아! 해운대 바다는 함성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맨사댕이’에 반쪼가리 수영복만 겨우 걸친 채 얼음물에 뛰어든 수천 마리의 인간 북극곰, 우리가 진정 환웅과 웅녀의 후예였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사납게 밀려오는 파도에 강타당해 소용돌이 물속에서 네댓 바퀴 구른 후 넋이 나간 채 더 크고 센 파도를 열망하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솟구치는 것일까. 올해를 후회 없이 보내고 내년에도 맹렬하게 살겠다는 강한 응전의 의지일까. 3주가 지난 오늘에도 나를 단숨에 굴복시켰던 그 세찬 파도 생각에 다시 가슴이 출렁이고, 그 위대한 조우가 너무도 그립다.

12월 16일 일요일 아침 7시, 호텔 로비에 드렁큰 펭귄들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모두 바다수영 ㅤ웹슈트를 입은 채였다. 전날 취소된 1킬로 동행수영 코스에 독자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새벽 바다는 어제보다 부드럽게 육지보다 따스하게 반겨주었다. 해운대 해변에서 수중방파제등표를 반환점으로 약 1.3킬로를 완영한 후 무사히 출수했다.

동쪽에서 막 떠오른 ‘겁나게’ 붉은 해가 이 ‘부잡한’ 펭귄 무리를 때마침 환영하니 이보다 화려하고 ‘어메이징’한 장면을 그 어디서 마주할 수 있으리야. 셰익스피어 사극 ‘헨리 5세’의 대사처럼, “우리 소수들, 우리 행복한 소수들, 우리 ‘펭귄’ 형제들”은 그날의 모험적인 전투를 인생의 교훈처럼 간직할 것이다.

드렁큰 펭귄스는 산수동 동구국민건강체육센터 아침수영 동호인들로 구성된 마스터즈 장거리 오픈워터 수영팀이다. 2020년 2월 초 불현듯 창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실내 수영장이 자주 문을 닫았다. 애타게 찾았던 다른 지역 수영장도 마찬가지였다. ‘지속적인’ 스포츠와 ‘익사이팅’한 휴식의 대안을 오랫동안 궁리했던 필자는 마치 단테의 ‘데카메론’에서처럼, 실내 방역과 격리를 피해 탁 트인 바다로 나갔고, 평소 마음에 숨겨뒀던 팀명을 앞세워 2021년 7월 동호회를 창단했다.

‘마스터즈’라는 명칭대로 매일 자유형 2킬로를 ‘완숑’하고 4월에서 12월까지는 바다수영에 도전한다. ‘드렁큰’은 바다수영 후 즐기는 맥주 한 캔에서 비롯됐으며, ‘펭귄스’는 회원들의 능숙한 다이빙 스타트 모습이 흡사 남극 펭귄들이 줄지어 입수하는 듯 보여서 감히 빌린 이름이다.

일명 ‘드펭스’의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활동 수역은 제법 드넓다. 4월 대구 장거리 수영 대회를 시작으로 6월 한강 크로스 스위밍 챌린지 대회, 12월 해운대 북극곰 축제, 그리고 이듬해 2월 광주, 후쿠오카에 이어 싱가포르 세계 FINA 마스터즈 수영 선수권대회 출전 등이다. 회원들은 나이와 성별에 차이 없이 평등한 교류를 위해 모두 ‘닉네임’으로 통한다.

‘노빠꾸’ 랩수영 독려 고고킹, 프로 사진작가 우디송, 조각 아티스트 응달샘, 접영 만세 홍접자, 근육 펌핑 돈나상, 김포 총각 따미삼과 건물주 유재삼, 장거리 루키 비온다, 아아톰과 드래근, 거기에 황여사와 신난다, 시나몬과 비오네 등 펭귄스 페블스 회원들이 매일 아침 푸른 물속을 가르며 숨가쁜 삶을 시작한다.

데카르트의 말로써 드펭스의 열정을 응원한다. “우리는 수영한다, 고로 존재한다.” 2024년 Go, Go, 드렁큰 펭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