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청해진과 항해 편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청해진과 항해 편지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1.03(수) 13:50
임효경 완도중 교장
완도 청해진 항에 와 보신 적이 있는가?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맨발 걷기를 해 보신 적이 있는가? 저녁에 완도 타워에 네온 불빛이 들어와 거대한 항해선이 바다에 뜨는 것을 보신 적이 있는가? 청해진항 전체 포구를 한 컷 사진에 다 담을 수 있는 곳, 음악 등대 방파제를 향해 걸어 가 보신 적이 있는가? 여행을 즐기는 내 친구는 그 저녁 장면 청해진항이 세계적인 미항(美港) 나폴리보다 낫다라고 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 건강한 빙그레 섬, 완도 청해진의 유일한 단점은 참 멀다는 것이다.

매주 광주에서 출발하여 완도로 돌아오는 길은 다섯 개의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 나주-영암-강진-해남-완도.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두 시간 걸린다. 오다 보면, 지친다. 다리 힘도 어깨 힘도 빠지고, 허리도 아프다. 언덕을 넘고, 산도 지나치고, 들판을 달리다 보면, 눈도 흐릿해진다. 그런데, 완도대교를 지나면서, 바다가 보이면, 아~! 탄성이 나온다. 청해진 항 전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난 가슴이 울컥한다. 바다가 주는 위로일까? 태고의 원천인 물이 주는 힘일까?

나는 완도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알아 버린 내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과 터가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서만 터지는 호흡이 있다. 어쩐 일인지 그곳에서는 거기를 색다른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지는 설레는 마음이 기류를 이루고 상승한다. 내게 완도는 그러한 곳이다.

완도에 대한 데자뷰가 있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최고 사랑하는 책이 ’해상왕 장보고‘였다. 저녁이면 참 많이도 읽어 주었던 기억이 있다. 장보고가 이 작은 나라 이 작은 포구 청해진에 진을 치고, 대국 당나라와 무역을 틀 때,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어린 아들에게도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큰 나라에 기죽지 않고 무역을 주도하고, 큰 돈을 벌고 돌아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주는 그 위인이 무척 흥미롭고, 대단해 보였으리라.

아들이 장보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있다 보니, 어느 여름 완도 여행을 갔다. 아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했다. 완도 지도를 만든 유명한 아저씨를 만나야 한단다. 그런데, 보길도 윤선도의 세연정 정각에서 그 분을 딱 만난 것이었다. 아들이 첫눈에 알아본 것이다. 수줍은 아들은 당신을 알아봐 준 것으로 감동한 아저씨의 품에 안겨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장면을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아하~!! 보길도가 가슴에 스며들어 와 살며시 자리를 잡는 것을 느꼈다. 보길 초등학교 담장 동백나무 이파리 밑에서 어렴풋이 아련한 느낌이 왔다. 다시 이 곳에 올 것 같다는 예감. 아니나 다를까, 10여 년 후 나는 완도 노화도 섬마을 선생님이 되었고, 돌고 돌아 10여 년이 또 지나 완도중학교에 오게 된 것이다.

마음이 설레면, 잠재워야 할 거리를 만든다. 그래서 난 완도에서 남다른 시도를 했다. 완도중 교장으로 부임해 오면서 여러 번 망설이고, 해야 할까? 굳이 꼭 해야 할까? 고민했던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한 주를 시작하는 날에 교직원들에게 한 편의 글을 보내면서, ’완도중 항해 편지‘라 명명했다. 많이 망설이고 고민한 이유가 있다. 요즘 세대와 이전 세대가 소통하기는 자타가 공인할 난제(難題)이다. 수업 연구, 학생 생활지도, 업무 처리하기에도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학교생활에 교장의 편지가 날아오면 학교 구성원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 아닐까? 거부하거나 잡음이 날 것 같다면 시작하지 않은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용기를 냈다. 거기엔 장보고의 일갈이 도움이 되었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선하다면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청해진 바다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는 해상왕 장보고가 내게 가만히 건네는 말이었다.

내 의도가 선하지 않은가? 학교를 함께 만들어 가는 선생님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선하지 않은가? 그럭저럭 흘러가 버릴 학교 일정 속에서 새롭고 유쾌하고 상쾌한 일들을 찾아 나누고자 하는 것이 선하지 않은가? 어렵고 힘든 상황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선하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 젊은 선생님들은 거친 씨앗을 잘 받아 줄 만큼 마음 밭이 유연하고 기름졌다. 마치 좋아요! 구독!을 눌러 주는 것처럼 기쁘게 답장해 주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항시 열어 놓은 교장실 문을 넘어 ’선장님~!!‘하고 부르며 다가와 주는 선생님,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민도 들려주고, 함께 웃을 일도 나누었다.

2023년 마지막 주 서른다섯 번째 항해 편지엔 이렇게 썼다. 선생님, 두렵고 떨리는 일을 이겨낼 때 성장과 발전이 있더라고요. 혹시 ’난 안돼~~’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내가 왜 해?’하는 마음 있으신가요? 만약 그 동기가 ‘선(善)함’이라면, 그냥 하시길. 2024년도엔 더 용기를 내시길. 확언하건데, 힘든 일도 선한 의지를 가지면 감당할 만큼의 사랑의 힘과 지혜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