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새해 아침, 무등산에서 맞는 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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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새해 아침, 무등산에서 맞는 해맞이
오덕렬 전 광주문인협회장·한국 창작수필 문인협회 이사장
  • 입력 : 2024. 01.04(목) 14:22
오덕렬 이사장
‘지질공원센터’가 알은 체를 하며 미소를 보낸다. 들렀다 가라는 은근한 인사다. 신춘 해맞이를 앞두고, 묵은 세배 올리러 무등산을 찾는 길에서다.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무등산을 지질학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겠지’. 이 개념으로 생각하면 무등산 주변을 모두 포함한다. 충효동 점토광물산지, 화순 서유리 공룡화석지·적벽·고인돌·운주사의 층상융회암에서 담양의 습지·추월산의 구상암·가마골·금성산성의 화산암군까지를 아우른다. 무등산은 2013년 봄, 한국에서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다음 해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또 그 4년 뒤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2018)으로 지정되었다.

그 까마득한 지질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8700만 년 전 백악기…. 그 머언 먼 역사는 가늠이나 되는가. 이런 대자연의 시간을 오롯이 품은 무등산! 태초에, 지하에 흐르던 마그마가 지반이 약한 곳을 뚫고 화산이 폭발했다. 이때 무등산 보다 높은 불기둥이 솟았다. 시뻘건 용암이 분출하고, 화산재가 쌓이고…. 그리고 냉각과 수축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주상절리가 지금의 형상으로 굳어가며 세월을 보냈다. 무량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스치고…, 공룡이 살다 갔고….

마고할매는 무등산의 생성 역사를 알고 계실까. 하늘과 땅도 나누어지기 전, 혼돈 세상도 지켜보았을까, 할매는. 마고할매는 신선이니 상상의 사람. 사물의 본 이름은 그 형상에 붙어다니는 게 아닐까. 체 보고 옷 짓고, 꼴 보고 이름 짓는다고 했다. 체가 작으면 ‘쪼깐이’라 부르데끼 말이다. 무등산은 동서남북 어디서 봐도 둥구수룸허니까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의 뜻도 담았지 않았을까. 무등산의 별칭은 서석산瑞石山―상서로운 독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는 ‘무돌―무지개를 뿜는 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무등산 정상 천·지·인 3봉 중 광주의 지붕인 천왕봉―원효사까지 다니는 광주시내버스 1187번은 천왕봉의 높이를 말해 준다―은 젤 높은 봉우리다. 지왕봉, 인왕봉도 주상전리대. 서석대, 입석대, 규봉전리대가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로 손꼽힌다. 주상절리대는 지질공원의 꽃. 무등산을 암석미로 절경을 이룬다. 3대 주상절리는 3대 석경이다. 나란한 결의 돌기둥이 4각·6각, 여러 각으로 수정 병풍을 둘렀다. 눈을 감고 경건한 자세로 모성의 산 무등산에 안겨 어머니의 숨소리를 듣는다. 산의 숨소리에서 땅의 역사를 듣기도 하고, 천왕봉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천왕봉에 오른 적이 꼭 한 번 있다. 그러니까 군부대가 없을 때였다. 동창인 고향 친구와 고1때 정상에 올랐다. 두 팔 벌리고 무등산 정기를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희망은 펄펄 끓는 용암이었다. 삶의 고비마다 분출하여 내 갈 길을 제시해 주었던 뜨거운 희망이었다. 순아순아 걷다보니 이제 겨우 증심교. 왼쪽으로 접어들면 바람재·토끼등이요,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당산나무가 있는 신림마을이다. 지겟작대기 알구지처럼 갈라진 두 길. 신림 마을 쪽을 택했다. 거침없이 흐르는 맑은 계곡 물소리에 끌렸을까. 물소리를 들으니,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소리는 나를 데리고 중머리재로 오르고 있다. 요 근래에 이런 시원한 물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계곡의 바위는 이끼옷을 두텁게 입고, 건강한 모습이다. 계곡물에서는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는 가재, 다슬기, 강도래, 무당개구리, 버들치들의 세상이다. 가재와 다슬기는 개똥불이의 먹이가 된다. 곧 무등산 계곡에 발광기에서 연한 황색의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가 하늘을 날 것이다. 반짝반짝 반딧불이 계곡을 밝히는 여름이 머지않았지 싶다. 반딧불이 수놓는 계곡의 밤은 낭만과 환상의 피서지가 될 것 아닌가. 무·진·장을 찾아갈 것 없다. 무등산 계곡이 반딧불 축제장이 될 것이니 말이다.

무등산은 살아 움직인다. 물은 순환하고, 씨앗들도 물, 바람, 동물에 의해 여행을 다닌다. 생태계의 속성이 변하는 숲의 천이도 상상해 본다. 무등산의 깃대종 동·식물은 무엇일까. 동물은 족제비과인 수달. 멸종 위기 1급으로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광주의 제2·4 수원지 및 풍암제에 서식한다는 안내다. 나는 풍암제에서 본 기억이 있다. 깃대종 식물은 털조장나무. 무등산과 조계산 등 남부의 제한된 곳에서만 자생한단다. 생강나무와 비슷하다. 꽃과 잎이 같이 피고 자잘한 노란색 꽃이 우산을 펼친 듯 둥글게 모여 핀다. 이런 꽃차례를 산형화서라 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지상에서 땅 속 역사를 잘 말해준다. 마음으론 중머리재도 천왕봉에도 댕겨왔다. 지금은 수령 700년의 느티나무가 지키는 신림마을. 용처럼 꿈틀대는 뿌리 위에 앉았다. 어둠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