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노영필>한동훈식 정치와 선다형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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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교육의 창·노영필>한동훈식 정치와 선다형 교육
노영필 교육평론가
  • 입력 : 2024. 01.07(일) 14:32
노영필 교육평론가
‘학교는 온실같다’는 표현에서 ‘학교’ 를 ‘검찰’로 바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온실에 있던 한동훈검사는 급기야 온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MZ세대들에게 통하는 꽃게 제스처로 데뷔했지만 50이 넘은 꼰대스러움까지 보인다.

그의 막말과 맥락없는 아무말 잔치를 들을 때마다 입시에 잘 훈련된 성적 좋은 학생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동훈은 관성지수가 높아 정해진 선택형에 잘 길들여진 모습을 보인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단순논리로 재단하고 언어만 현란해지는 치기가 유치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흔히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과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학생들 중에는 제시 조건에 재능이 있는 시험형과 제시 조건과 상관없는 해결책을 사용할 줄 아는 비시험형 스타일이 있다. 어떤 스타일이든 공통적으로 사고의 지배를 받는 객관식 문제풀이 훈련이 있다. 여태까지 써온 보편적인 방식인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논리학이나 심리학에서 보면 정형화된 반복훈련으로 사람을 패턴화시키는 단점이 숨어 있다.

어찌 보면 인류사는 정형화에서 비정형화로 해체되는 역사다. 갈수록 권위에 의한 통제보다 자율에 의한 협의가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통제적 권위주의 사회일수록 평가방식을 객관식화하려고 한다. 겉보기에 정형화된 평가는 공정하게 보인다. 일정하게 유형화되도록 반복되게 훈련하면 하나의 방식으로 정착되고, 그것은 답 중심의 사고로 굳어진다. 선다형 추론이라는 거대한 형식논리로 길들여져 범죄자를 다룰 유용한 문답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본인의 스토리를 듣기 위해 에세이나 학업 계획서를 제출받아 참조한다. 뿐만아니라 대부분 학생들은 선다형으로 길들여졌다가도 서술형이나 논술형으로 적응해가는 길을 걷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 이상 형식논리학이 아닌 변증법적 논리나 모순론, 불교의 연기론과 같은 변화를 전제하는 추론방식에 눈을 뜰 수밖에 없어서다.

교육적으로 보면 검찰은 학교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이다. 그곳이 20대부터 살아온 한동훈의 세계다. 지금의 학교는 자율성이 늘었지만 그가 자란 시대는 권위주의 시대였다. 그 연장선인 피도 눈물도 없는 검찰 세계로 이동한 그의 삶은 선다형의 논리가 더욱 고착되었을 것이다.

속사포같은 언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그에게 환호하는 대중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점에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은 맞다. 과연 능력자일까. 그의 표현을 논리적으로 추적해 보면 개인기량이 선다형 논리구조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다. 창의성이 빠진 선다형 교육 탓이 크다.

한동훈의 발언과 논리의 저변에는 선다형의 저급함이 보인다. 선다형 사고는 그에게 평생 자신감 넘치는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주었을 터지만 무기력한 내 역할은 4지선다형으로 자란 세대의 비극적 결말을 방치한 평생 공범으로 읽힌다.

선다형에 길들여진 한동훈의 정치는 논리적인 완결성도 창의성도 없다는 데서 제2, 제3의 한동훈이 나타날 미래가 불안하다. 범죄를 구성하는 검사들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나쁜 습성만 있지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설득할 내용이 없다. 범죄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출발로부터 상황과 조건에 맞게 출제된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 바로 수사여서 더 아프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과 사건이 대부분이다. 나와 직접 연관이 없으면 방치한 탓에 해결책을 못 찾아 복잡한 것처럼 인식될 뿐이다. 복잡한데 단순하게만 보게 만드는 것이 세상 논리이고 그 단순화가 바로 선다형식 갇힌 사고다. 갇히면 자신감을 내보이는 논리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데 편하다.

한동훈의 화법과 논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선다형의 단순성이다.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대답하기 곤란하면 아예 논점을 바꾸어 대답한다. 별건 수사기법이다. 익숙해진 선다형 문제풀이 방식의 폐해를 즐길 뿐이다.

잘 훈련된 선다형 교육은 그래서 위험하다. 우리 교육이 달라져야 할 중요한 이유다. 검찰의 선다형 관성에 붙어있은 도덕불감증이 위기 징후다. 범죄자로 내몰리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죄를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있는 힘을 쥐고 검사동일체논리로 담합까지 할 수 있다. 최고로 나쁜 것은 선택형의 담합이 만든 피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퍼즐을 맞추는 데까지 왔다.

한동훈이 온실 밖으로 나오면서 발언한 내용은 자기 논리는 없고 검사의 논리만 보인다. 출제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화법과 정치적 안목은 선다형에 철저하게 갇혀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비극적인 정점을 보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