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꿈과 환상’ 살리지 못한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위시’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꿈과 환상’ 살리지 못한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위시’
크리스 벅·폰 비라선손 감독 ‘위시’
  • 입력 : 2024. 01.07(일) 14:46
영화 위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위시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의 일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소형 영사기를 가져온 막내삼촌 덕에 벽에 흰 천을 두르고 소리 없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쥐와 고양이의 쫓고 쫓기며 골탕 먹이는 내용이었는데, 집에서 보는 영상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나중에(TV 시대 이후에) 알고 보니 디즈니 사의 초기 단편 ‘톰과 제리’(1956~1967)였다. 진 데이치, 아니면 척 존스의 흑백 단편 애니메이션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한두 해 후에는 광주 동방극장에서 총천연색(컬러판) 장편 ‘피터팬’을 보러 가족 나들이를 했던 기억도 있다. 영화 속 팅거벨이 금가루 은가루를 뿌리며 포로롱 나는 모습은 어린 필자에게는 꿈이었고 환상이었다. 이렇듯 월트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필름은 100년의 역사를 누적해오는 동안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안겨준 공로가 컸다. 그러나 전성을 누리는 모든 일에는 ‘일신 우일신(一新 又一新)’하지 않으면 스러지게 마련이다. 디즈니 사로서는 매너리즘을 지적받거나 3D시대의 도래 이후 긴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디즈니 사 90주년 기념작 ‘겨울왕국’(2013)과 같은 애니메이션이 지나온 역사와 명성을 지탱해주기도 했다.

디즈니 사 100주년 기념작인 애니메이션 영화 ‘위시’는 ‘겨울왕국’의 제니퍼 리 감독이 각본을 쓰고 크리스 벅 감독이 작업한 작품이라 90주년 기념작보다는 +α의 가중치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디즈니 사의 명성에 걸맞게 ‘위시’는 시각적 표현이 화려했다. 2D의 수채화와 3D의 테크놀로지가 부린 마법의 로사스 왕국과 밤하늘, 숲은 관객을 동화의 나라에 성큼 들여놓게 만들었다. 특히, 주인공 아샤의 갈색 얼굴에 17세 소녀다운 죽은깨를 묘사한 디테일이 재미있었다. 영화의 포인트인 빛이 도드라지도록 조명을 효과적으로 잘 다루는 등 작품의 테크닉 수준은 밀도가 높아보였다.

그렇지만 작품의 생명은 콘텐츠에 있다. 영화 ‘위시’의 경우는 스토리가 ‘선·악의 대비’ ‘악의 응징’과 같은 ‘권선징악’이라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꿈과 소망을 이루는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니고 마법사 왕에게 의탁한다는 국민의 의식은 납득하기 어려운 소재였다. 구태의연한 주제와 소재에 대한 매력이 낮다 보니 자연 몰입도나 집중력이 떨어졌다. ‘겨울왕국’에서 보여주었던 참신한 발상이나 신선한 충격이 없어서 심드렁해진 관람. 심지어 OST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렛잇고 렛잇고~’를 흥얼거리게 되던 때와 달리.

애니메이션 영화 ‘위시’에 담긴 몇 가지의 아이러니를 생각해본다. ‘위시’에는 지난 세기 디즈니의 성취를 담은 작품들의 요소를 차용했다. ‘일곱 난장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 구성되었고 ‘미키 마우스’ ‘밤비’ ‘주토피아와 숲’부터, “거울아, 거울아…” 묻는 신 등을 장치하는 등 마치 디즈니 사의 회고록 같은 작품이었다.

디즈니 사가 애니메이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만큼 앞으로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의 비전을 작품을 통해 관객은 고대한다. 그런데 관객의 염원이 반영되지 않은, 디즈니 사 100주년 기념파티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크로체나 부르크하르트 같은 수많은 역사가들이 말했듯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역사탐색 행위는 현재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나아가, 미래적 시각과 방향성, 미래지향적 가치를 찾기 위한 성찰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면, 단지 역사 파먹기에 불과하다.

‘위시’에 주인공 아샤가 흑인인 것을 위시하여 유색인종들을 차별 없이 등장시킨 것이 눈에 띄었다. 매그니피코 왕은 왕국을 만들고 차별 없이 문호를 개방했다. 마치 미국이 오늘날의 ‘international bowl’이 된 것처럼. 이민의 국가인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민주정치를 신봉한다. 그런데 독재자 매그니피코 왕이 몰락하자 좀 더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왕비가 여왕이 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또는 어른이들에게 어떤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것일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언제까지 왕국과 왕궁, 공주 신드롬을 지속할는지 의문이다. (1월 3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