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김명희>금일가위 물지명일(今日可爲 勿遲明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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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교육의 창·김명희>금일가위 물지명일(今日可爲 勿遲明日)
김명희 아동문학가
  • 입력 : 2024. 01.21(일) 14:52
김명희 아동문학가
아파트 수거함에 버려진 선풍기 날개가 돌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기 위해 바람을 빌어 날개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 속에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사전적 의미를 들춰보면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하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선풍기는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스스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지 못한다.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매스컴을 통해 밤새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사람이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물론 자동시스템을 설정해 두면 자동으로 얼마만큼 돌다가 그치도록 진화했다. 그것도 선풍기 스스로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설정된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하는 시스템을 누군가 달아 주지 않으면 이루어 낼 수가 없는 것이 자기 주도적 학습이지 않을까 싶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인물로 설정해 둔다. 나도 캐릭터를 설정할 때 이 세상에 이러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며 강한 주장을 펼치도록 자기 주도적 삶을 살게 만든다. 그것은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지 못하고 있는 나 스스로 자책하며 동화 속에서라도 자기 주도적 삶을 살도록 설정하려고 애쓴다.

동화 ‘귀신고래 대미의 모험’에도 자기 주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귀신고래 대미는 태어나자마자 포경선에 의해 엄마, 아빠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어느 날 발견한 대장고래 지침서를 얻으면서 자기 주도적 학습을 시작한다. 학습이 다 이뤄졌을 때 세상 속에 자기가 설 자리가 생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고난이 있다. 또래 친구들한테서 왕따 당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또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물론 아픈 이별도 스스로 경험한다.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뒤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야기는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일 뿐 현실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스스로 자기 주도할 수 있는 습관이 길들여지기까지 부모의 손길과 선생님들의 손길, 이웃들, 사회, 즉 모든 공동체가 우리의 아이들을 잘 키워 내려고 할 때다.

우리는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또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기도 하면서 반복되는 생활 속에 얻어진 깨달음이 왔을 때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무턱대고 공부하라고 아무리 잔소리해 봐야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앞집에 사는 아이를 만나서 방학이라 좋겠다고 했더니 방학 동안도 학교에 다니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아침 몇 시부터는 영어학원에 가야하고 다녀와서는 공부방에 가서 숙제도 하고 공부하다가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것이다. 방학이 되어도 방학이 아닌 생활이 자기 주도적 학습 방법일까? 어느 선까지가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고 인증을 할 것인가.

선풍기가 열심히 날개를 돌리는 것도 전기라는 에너지와 플러그를 꽂아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날개를 돌리는 에너지와 플러그가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도와준 탓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자기주도적인 힘을 만드는 것은 엉뚱하게도 어른들 몫이다.

정약용은 ‘다산전집’에서 “금일가위 물지명일(今日可爲 勿遲明日: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이라 했으니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룰수록 내일의 일은 더 많아질 뿐이라고 말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 할 일을 미루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