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블루 칼라 시인’이 말하는 ‘같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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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블루 칼라 시인’이 말하는 ‘같이’의 힘
켄 로치 감독 ‘나의 올드 오크’
  • 입력 : 2024. 01.21(일) 15:27
켄 로치 감독 ‘나의 올드 오크’. 영화사 진진 제공
켄 로치 감독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등으로 알려진 영국 켄 로치 감독. 칸 영화제에서 두 번의 황금종려상과 세 번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거장이다. 노동권, 복지 소외층 등 사회적 약자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만큼 ‘블루 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난민을 향했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 동북부 해변을 끼고 있는 한 폐광촌 더럼이 배경이다. 폐광 이후의 이곳은 몰락한 도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교회, 학교 등 편의시설이 없어지자 빈 집도 늘고 집값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등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곳이다. 남은 사람들의 일상 중 유일한 낙은 동네 낡은 선술집인 펍 ‘The Old Oak’에 모여 한잔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한 대가 도착, 시리아 난민들을 내려놓는다.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는 보통 큰 사건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의 영국 사회는 반 난민 정서가 확산돼 있었다. 정치계와 언론의 합세로 반대여론이 점차 심화되어가고, 종교도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난민을 쉽사리 포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난민에 대해 퍽이나 각박한 나라였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랬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에 오랜 내전을 견디지 못한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100만 명 넘는 시리아 난민이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거나 육로를 따라 유럽으로 향했다. 난민이 몰려드는 길목에 있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몰려든 이들을 돌려보내느라 적잖은 신경전을 벌였다. 이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5년 9월 인도적인 입장에서 무제한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로 인한 후유증도 적잖았지만, 근간의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우호적 입장은 메르켈 총리가 귀감이 되어서였지 않은가 싶다.

버스에서 히잡을 쓴 난민들이 내리자 ‘두건 대가리’라 부르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 ‘꺼져!’ 같은 욕을 퍼붓는 동네사람들. 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소녀 야라(배우 에블라 마리)의 카메라를 부수기에 이른다. 아버지의 선물인 카메라는 야라에게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자 사랑이다. 영화의 주된 소재인 카메라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이 처한 현실이자 이방인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재를 비추는 민낯이다. 펍 안에 방치된 방 안에는 탄광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 역시 폐광을 반대하고 복지를 투쟁해왔던 과거의 얼굴이다. 주민들의 아픔과 난민들의 아픔은 과거와 현재이지만 아픔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감독은 아픔이라는 공통점을 치우치지 않도록 조명해낸다.

카메라 수리를 도와준 것을 계기로 야라와 ‘TJ’로 불리는 펍의 주인 토미 조 밸런타인(배우 데이브 터너)은 친하게 지낸다. 서로의 슬픔을 음식으로 달래주다 음식으로 마음을 통합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것처럼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거야…”라고.

켄 로치 감독은 ‘같이’의 힘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의 해독제가 될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웅변한다. 감독의 메시지이자 영화의 귀결은, 다른 나라에서는 기적과 같은 결말일는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공감 영역이다. 우리에게는 귀중한 사회적 유전이자 문화적 유산이 있어서이다. 바로 오랜 농경문화의 전승 속에 자리잡은 ‘we-ism’이다. 함께 새참을 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노동력을 나누는 ‘품앗이’에는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진보의 에너지이자 공동체의 가치인 것이다.

박힌 돌에게 굴러온 돌은 세계 어느 곳에서건 불편한 존재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이렇듯 빛나는 공동체의 문화유산이 있다. 새로운 신입사원에게, 새로 이사온 이웃에게, 다문화 가족에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박힌 돌로서의 친절과 도움의 사회적 DNA를 발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1월 17일 개봉.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