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박관서>광주의 청년문학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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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박관서>광주의 청년문학을 읽는 시간
박관서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 입력 : 2024. 01.23(화) 17:44
박관서 시인
‘누구에게나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 거라며 긴 꿈속에 나타나 뭉툭한 손으로 하늘을 잡아당겨 일곱 개의 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느 별에 몸담고 있을 건지를 알려주지 않고 떠나갔다 눈을 뜨면 발자국이 사라진다는 것을 눈도 귀도 사라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붉은 꽃이 피었다가 진다’ - 강희정 시 「조용한 바람」 일부.

어느덧 한 해가 가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성큼 다가왔다. 수년 전에 코로나바이러스로 다가온 인류문명 차원의 세기말적 위기는 멀리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핵 오염수 방류와 가까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절차에 의한 민주주의의 혼란 등이 극도로 겹치고 있다.

문단의 말석에서 졸필로나마 글을 쓰는 처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밀려드는 혼돈을 어쩌지 못하고 다만 이를 직시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처럼 곧고 바르게 바라보는 일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내 몸을 담고 있는 지역과 내 마음을 싣고 있는 문학으로부터 이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지역문학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쪽진 여유없음이 이를 뒤로 밀쳐두게 하고 또한, 언뜻 손에 들려있는 광주청년작가문학포럼의 결과물인 청년작가 문학엔솔로지 『광주청년, 문학으로 만나다』(국제PEN한국본부 간행)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광주에도 청년작가들이 있었다. 지난해 광주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제9회 세계한글작가대회>와 함께 하는 라운드문학포럼으로 <2023 광주청년작가문학포럼>을 개최했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시간으로 오늘을 사는 청년작가들의 존재는 그대로 우리들의 오늘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 어제로 오늘을 성찰하는 역사적 방식과는 달리 불투명한 내일로 오늘의 아름다움을 설계하고 표현하는 문화예술의 방식은 충분히 청년의 의미에 값하는 일일 터이다. 그렇듯이 ‘모든 작가는 청년이다!’라는 구호로 전남대학교 민주마루 강당에서 3박 4일의 행사를 마친 세계한글작가대회의 폐회식에서도 이를 확인했었다.

그러한 뜻을 되새기면서 이제 일정한 어제가 되어버린 광주청년작가문학포럼의 의미를 슬슬 짚어본다. 문학포럼에 참여한 40여 명 청년작가의 대표작품이 어우러진 문집 『광주청년, 문학으로 만나다』에는 그처럼 다양한 문학세계가 펼쳐져서 눈길을 끌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가야 할 내일로 안내하는 이정표이면서 동시에 금세 어제로 밀려가는 오늘의 어두운 발자취를 환히 밝히듯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그런 생멸하는 존재의 필연성을 잊고서 ‘눈을 뜨면 발자국이 사라진다는 것을 눈도 귀도 사라진다는 것을’ 잊고서 잃어버린 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본질로부터 성찰하고 짚어내는 시들이 생생한 비린내를 풍기면서 빤히 바라보는 고등어의 동그란 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젊은 그들의 혼돈과 불안도 보였다. ‘서로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봐요/ 뒷모습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속삭여요’(백애송 시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버지는 죽어야만/ 하나 죽은 아버지를 나는 받아들여야 하나’(오성인 시 「뼈에 사무친 말」)

그리고 다시 그러한 혼돈과 불안을 이겨내려는 마음도 보인다. ‘해가 있는데 사방이 어둑어둑하고 내가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성당 입구에 서 있다 계속 거기 서 있을 수 없지만 한참 서 있다 여자가 또 종이꽃을 내민다 자 여기 작약’(이서영 시 「나는 꽃을 사지 않아요」 와 같은 미적 감수성으로의 삼투는 물론 현실적인 인식의 전환으로 치환해내기도 한다. ‘서로가 생긴 게 달라서/ 매달린 순간들이 달라서/ 섞이지 못하는 세상, 저들에게는 없다,’(오선덕 시 「빗방울의 기분」)

밖에서는 계속 눈이 내린다. 책의 반 틈이 넘는 산문과 소설들은 아직 읽지도 못했다. 광주의 청년문학을 만나는 일이 참 생생하면서 또한 만만치 않고 멀어서 그래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