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미술관 소장전 ‘이강하의 응시凝視, 1984-2024’가 오는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
이 화백은 남도의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선상에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가 직접 목도한 1980년 5월 비극의 광주 풍경을 화폭에 옮기지 않았다.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과 먼저 떠나 보낸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 그 날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대신 그가 5·18 이후 펼쳐지길 바랐던 이상향의 세계는 ‘발’을 통해 나타났다. 이 화백이 1980년대 천착한 ‘맥(脈)’ 연작이다.
맥 연작은 이 화백이 5·18 시민군 활동 이후, 시대의 아픔과 경험이 혼재되어 회화로 풀어낸 작업이었다. 이 화백은 5·18 이후 전국의 사찰로 은둔생활을 하며 열망했던 과거-현재-미래 그리고 시간-세월-세대가 연결된 자유와 평화를 그려냈다. 사찰을 풍경으로 중첩된 ‘발’의 그림은 꿈꾸던 이상향으로 가는 통로이자 문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발 너머의 세계는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쉽게 도래하지 않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강하 작 무제-자아. |
맥 연작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는 1984년 작 ‘맥-아(脈-我)’는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지원 사업에 선정돼 보존수복을 거친 작품이다. 보존수복 작업 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며 수복 과정을 아카이브 자료로 정리해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이 화백 대표작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2m 길이의 대작에는 무등산에서 시작된 비단길이 금강산, 백두산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 평화, 자유를 향한 열망이 광주를 넘어 세계로 이어지는 광주정신을 시각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오방색을 바탕으로 그려진 풍경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미학도 엿볼 수 있다.
살아생전 ‘민중미술 작가’라고 말하는 것을 죄스러워 했던 고인은 직장암 판정을 받고 5년 동안 투병 생활 끝에 지난 2008년 숨졌다. 이때 마지막으로 작업 중이던 유작 ‘무등산의 봄’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통해 전시해설을 들을 수 있다. 관람 문의는 이강하미술관(062-678-8515).
5·18 시민군으로 활동한 이강하 화백의 무죄 판결문.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