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윤영백>학교, 팔꿈치 사회의 욕망으로 채워지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교육의 창·윤영백>학교, 팔꿈치 사회의 욕망으로 채워지다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입력 : 2024. 02.18(일) 14:26
윤영백 위원장
최근 광주시교육청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S고등학교에서 전교 최상위권만 특별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나 이를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당당하게 답했다. “명문대 진학으로 학교 위상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어떤 법령이나 교육과정에서도 학교에 이런 임무를 부여한 적이 없다. 이런 일로 학교를 빛내라고 막대한 세금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교육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법은 교육(기본)법이다. 교육법에서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홍익인간>이 교육의 바탕이라 한다. 학교는 ‘인격을 도야하는 곳’, ‘자주적 생활능력을 기르는 곳’,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기르는 곳’, ‘함께 살아갈 줄 아는 태도를 배우는 곳’이라고 밝힌다. (교육법 제2조)

이런 정신을 어떻게 펼칠지 궁리해서 국가교육과정이 만들어진다. 교육법에 명시된 이념을 알차게 펼치려는 마음을 공교육 정신이라 부른다면, 학교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곁에 있는 사람 손을 잡도록 그 힘으로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북돋는 일을 해야 한다.

이처럼 ‘함께 존재하기’ 바닥을 다지는 것이 공교육의 존재 이유일 텐데 일부 대한민국 학교와 교사들은 그 반대되는 일을 서슴없이 한다. S여고 사건, K고 사건 등 입시 부조리가 이어져 온 광주에서는 유독 심하다.

성적으로 우열반 짜기. 잘하는 학생만 계속 잘하도록 관리하기. 상위권 학생을 위해 생활기록부·서술형 점수 고쳐주기. 방과후 학교, 야간 학습 등 강제학습하기. 극도의 경쟁상태 조성하기. 성적 우수자가 더 좋은 시설을 쓰도록, 더 많은 지원을 받도록 차별하기. 상위권 학생을 위해 나머지 학생들 들러리 세우기.

이는 고스란히 ‘교육법’을 학교 바닥에 거꾸로 처박는 과정인데, 교회에서 십자가를 뒤집는 것만큼 자기 존재 근거를 배반하는 일이다. 학생들은 인격 도야 대신 야만을 체화할 것이며, 자주적 생활능력은커녕 못난 자신을 찌르는 데 익숙해질 것이고, 민주시민은커녕 특권 주의자나 편협한 능력주의자가 될 것이므로. 돈과 권력을 위해 생명을 짓누르는 사회를 기획하고 그런 사회에 침묵할 것이므로. 결국, 인간을 널리 해롭게 할 것이므로.

한때 대학입시가 끝나면 학교 정문 앞에는 그해 SKY 몇 명 등이 적힌 현수막이 그 학교의 성적표처럼 붙었다. 현수막에 적힌 학생들은 넉넉잡아 그해 졸업생의 5%에 불과했을 것이다.

현수막에 붙은 5%의 학생이 학교의 자랑이라면, 나머지 95%는 실패일 것이므로 참 못된 자랑이고, 95%의 실패가 학생들 탓이라면 5%의 성공도 학생들 덕분이니 참 모자란 자랑이다. 그런데, 성공은 학교 덕분이고, 실패는 학생 탓이다.

지금은 현수막을 붙이진 않지만, 이처럼 얌체 같은 셈법으로 학교를 뽐내려는 모자라고 못된 자들은 여전히 넘친다. 학교의 연금술은 SKY나 의대 합격자로 평가되므로 나머지는 순금을 만드느라 생긴 불순물쯤으로 전제된다.

이들에게 교육은 피라미드 위쪽으로 오르기 위한 교환 경제에 불과하다. 그래서 피라미드 위쪽을 움켜쥐려는 속된 욕망에 부응하는 일이 학교의 주된 임무라 착각한다.

이것은 공교육이 아니고 이런 욕망이 부채질 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팔꿈치 사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후려갈기며 피라미드 위쪽으로 오르느라 피가 낭자하다. 이런 생존 경쟁을 학교에서 주도하면 공교육이고, 학원에서 주도하면 사교육인가?

공교육의 위기는 팔꿈치로 옆 사람 치는 일을 학원보다 게으르게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조차도 팔꿈치로 옆 사람 치는 일을 재촉할 때 생긴다. 사교육이야 학원비와 출세를 위한 입시기술이 교환되는 시장이 될 수 있지만, 공교육까지 왜 세금으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사교육이야 ‘피라미드 위쪽에 서지 않으면 네 인생은 실패’라고 위협할수록 시장이 커지겠지만, 적어도 공교육은 ‘피라미드 어디에 있든 네 존재는 소중해. 다른 존재도 소중하고’라고 말해야 세금값에 걸맞은 공공성이 산출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정선 시교육감 시대를 맞아 광주의 공교육은 더 과감하게 사교육과 쌍둥이가 되는 중이다. 팔꿈치 사회의 욕망으로 학교를 채워가는 행태를 교육청이 제지하기는커녕 정규교육과정 외 교육활동기본계획 등 그간 합의됐던 사슴의 울타리마저 치워주며, 이제 자율성을 보장할 테니 늑대의 자유를 누리라 한다.

중요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다. 하지만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게을러질 때 교육은 몰락하고, 보이지 않는 열매를 고작 SKY 실적이나 취업 성과로 보려고 할 때 교육은 타락한다.

시장의 논리로 공교육의 열매를 탐하는 한, 그런 욕망을 채우는 일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교육감, 교육 관료, 관리자, 교사들이 있는 한 공교육의 위기는 깊어질 것이다.

OECD 자살률 19년째 1위, 2023년 자살자 6만 명 중 절반이 10대, 20대. 최근 5년간 10대 자살시도가 70% 증가했다. 공교육이 싸구려 열매를 따는 동안 어린 생명들은 삶 밖으로 잘려나가고 있다. 한가롭게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정법대로 공교육을 가꾸자는 것이다. 생명을 뿌려 죽음을 수확하는 일이 교육일 리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