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타닥~ 순식간에 불 번져… 일대 잿더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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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 “타닥~ 순식간에 불 번져… 일대 잿더미로”
●광주 학동 미양산 화재 현장
인근 주민들 화마 속 혼비백산
밭주인 쓰레기 소각중 불 추정
"영농 부산물 태우기 주의해야"
  • 입력 : 2024. 03.20(수) 18:23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20일 오후 1시께 광주 동구 학동 산157-13 일원에서 발생한 불이 순식간에 인근 산으로 번지고 있다. 정성현 기자
“‘타닥타닥’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나가봤더니 앞산이 불구덩이 같은 모습이더라구요.”

20일 광주 동구 학동 화재 현장에서 만난 이성찬씨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건물 비상벨을 누르고 뛰쳐나갔다. 차 빼는 사람들, 맨발로 나온 사람들로 난리가 아니었다”며 “야간 근무 한 뒤 잠자던 중이었는데 눈앞이 온통 용광로 같았다. 순간 꿈꾸는 줄 알았다. 정말 죽다 살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께 학동 산 157-13일원 밭에서 불이 났다. 불은 초속 4m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인근 미양산으로 번졌다. 다 타버린 나무들은 힘없이 쓰러졌고 하늘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긴급히 호스로 물을 뿌렸지만, 강한 산바람 탓에 물줄기는 주변으로 흩날릴 뿐이었다. 불과 2m 인근 입주민들은 매운 연기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갑작스럽게 나온 탓인지 대부분 잠옷·슬리퍼 차림이었다. 일부 주민은 옥상으로 피해 화마를 지켜보기도 했다.

속절없이 번진 불은 옆 대나무밭으로 까지 이어지며 더 커졌다. 주민들은 ‘내 집까지 번지면 어쩌나’ 하며 직접 물을 뿌리기도 했다.

물통을 들고 화마 속을 뛰어 다니던 김성오(80) 할아버지는 “근처 있다가 불났다는 소리에 달려왔다. 생각보다 불이 커 깜짝 놀랐다”며 “소방차가 왔을 때는 이미 뒷산에 불이 번지고 옆 주택가까지 넘어오던 차였다. 평생 모아 산 집마저 불에 탈까 무서웠다. 바로 옆에서 학동 참사를 겪었다 보니 작은 사건에도 쉽게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20일 광주 동구 학동 일원에서 발생한 불이 순식간에 산으로 번지자 인근 주민들이 직접 진화에 나서고 있다. 정성현 기자
소방당국은 출동 소방차로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 남부소방과 동구·산림청 등에 협조 요청을 보냈다. 산림과 지자체·소방당국은 헬기 4대와 장비 37대, 진화 인력 307명을 투입했다. 산불은 발생 2시간 뒤인 오후 3시께 진화됐다. 잔불은 4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별다른 피해 없이 불길이 잡히자, 주민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모(31)씨는 “건물 옆 밭 주인이 종종 쓰레기 등을 태운다. 바람이 불다 보니 작은 불씨가 번진 것 같다”며 “이 산 주변으로 주택가뿐 아니라 조선대병원·조대부고 등이 있다. 큰 문제 없이 마무리 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이번 화재로 소방서 추산 임야 3500㎡가 불에 탔다. 인명피해는 없지만 인접 공동주택에 사는 주민 6명이 오후 1시 54분 내려진 긴급 대피령에 몸을 피했다. 대피령 전 자체 피신한 주민도 많았다.

경찰·소방당국은 인근 밭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던 중 불씨가 산으로 번졌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경위와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광주소방 관계자는 “이번 산불은 도심에서 발생한 불치고 몹시 큰 수준”이라며 “최악의 경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시기인 만큼 영농부산물 불법소각 등을 금지하고 작은 불씨 관리도 잘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강풍·건조한 날씨로 전국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는 지난 14일부터 ‘주의’ 단계로 상향됐다. 광주는 2022년 이후 매년 산불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4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광주 동구 학동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 진압 후 현장 모습. 산과 주변 건축물들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정성현 기자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