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언 한국지방정부연구원장·교육학박사 |
최근 해당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이력서 작성하기’를 과제로 제출하게 하였다. 90명 가량의 학생들은 다양한 배경 변인을 가지고 있었다. 출신 지역은 광주·전남이 다수였으나 수도권과 경상도, 전북 지역, 도시 규모는 광역자치단체에 속하는 대도시, 읍·면 지역 등의 중소도시에 해당하는 학생들도 다양했다. 사교육 경험은 5세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녀본 학생에서부터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여력이 없거나 학원이 없는 지역에 거주해서 EBS나 학교 수업이 전부였던 학생 등 차이가 컸다. 학생들의 대학 입학 경로는 대부분이 일반고 출신이었고, 소수의 특성화고 졸업생, 고등학교를 자퇴한 검정고시 출신, 재수생과 삼수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제출한 학습 이력서 중 공통적인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독서와 토론,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이다. 사교육을 받을 여건이 안되거나 부모의 교육관 때문에 책읽기가 일상이었던 경험을 가진 학생들은 그것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독서와 토론, 글쓰기와 관련된 교육 경험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매우 부족하였고, 이는 대학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의 수업과 심화 학습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시기부터 사교육을 경험하였고, 중학교 이후에는 사교육에 의지하였던 학생들은 사교육 덕분에 내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 경우도 있었지만, 성적에 맞춰 선택한 대학 전공은 입학 후 방황의 시간과 자퇴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학생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때, 혹은 재수생 시절의 성공적인 학습 경험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게 된 경우도 있었는데, 자신만의 학습 방법을 터득하여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역량이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가장 큰 영향력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와 관련된 활동과 학습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농어촌 지역 출신이거나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 사회적배려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농어촌학생, 장애인 등)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꿈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서 이러한 정책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더하여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힘들 때, 학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학업에 정진하도록 격려해주었던 교사들을 떠올리며 그들 역시 학생들에게 교육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돕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였다.
몇 년 후 학교 현장에서 활동하게 될 예비 교사들의 학습이력은 교육 개혁의 중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고, 정보통신 기술 및 인터넷 인프라, 반도체와 조선 산업, K-POP·영화 등 K-콘텐츠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면 화려한 성적 이면의 높은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생율 등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무한 경쟁에 내몰린 한국 사회와 교육을 대변한다. 사회 양극화와 갈등으로 불행한 국민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지금, ‘공교육의 정상화’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