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여덟 번째 기록-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능동적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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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여덟 번째 기록-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능동적 시도’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부교수
  • 입력 : 2025. 05.27(화) 13:16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읍의 경계인 조령산 기슭에 4월13일 밤사이 하얀 눈이 내려 산야를 덮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12일 저녁, 서울에는 눈이 내렸다. 봄꽃이 한창이던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눈은, 단순한 이상 기후를 넘어 기록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는 1907년 공식 관측이 시작된 이후 118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된 4월 중순의 눈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눈이 내리기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드는 완연한 봄날이었다는 점이다. 당일 서울에는 최고 0.6㎝의 눈이 쌓였으며, 이는 4월에 내린 눈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적설량이라고 한다. 기상청은 이러한 이례적인 현상이 한반도 북쪽에서 내려온 강한 저기압의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저기압은 찬 공기와 함께 강풍과 비를 동반하며 남하했고,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과 강설을 유도한 것이다.

지난번 산불에 이어 4월 중순 서울에 내린 눈까지, 기후변화의 징후가 일상 속에서 점점 더 자주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제 환경협약에서의 미국 우선주의 실현’을 내세운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파리기후협약에서의 탈퇴를 공식화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자국 소속 과학자들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 참여를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또 한 번 국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로 인해 2029년 발간 예정이었던 제7차 IPCC 보고서 일정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참고로 IPCC는 최근 제6차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이 보고서는 전 세계 기후 정책의 기준 자료로 공신력 있게 활용되어 왔다.

과학자들은 현재 전 세계 각국이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모두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이 2도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1.5도 상승을 막기 위한 시간은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고, 탄소중립 선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배출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인류가 직접 기후 시스템에 개입해 위기를 막는 ‘기후개입기술(Climate Intervention)’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기후개입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제거하는 CDR(Carbon Dioxide Removal) 기술이며, 다른 하나는 태양 복사 에너지를 줄여 지구를 인위적으로 냉각시키는 SRM(Solar Radiation Modification) 기술이다. 2020년부터 호주에서는 SRM 기술 중 하나인 MCB(Marine Cloud Brightening, 해양 구름 표백) 실증 실험이 진행 중이며, 올해 초에는 영국 주도로 미국과 협력하여 약 700억 원 규모의 SAI(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 실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IPCC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CDR 기술의 일종인 BECCS(Bioenergy with Carbon Capture and Storage, 바이오에너지 기반 탄소 포집 및 저장)의 기후변화 완화 효과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후개입기술은 궁극적으로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생태계 교란, 지역 간 기후 불균형, 국제적 갈등 등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따라서 실용화를 논의하기에 앞서 기술적 타당성은 물론 환경적 영향, 윤리적 기준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기후 시스템에 손을 대는 일은 곧 인류가 지구라는 복잡계에 개입하는 것으로, 과학적 엄밀성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기후개입기술에 대한 논의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흐름에서 뒤처질 경우, 향후 해당 기술이 국제적으로 적용될 때 한반도의 기후 특성과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한국의 기후 과학자들과 산업계가 기후개입기술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정부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련 연구와 정책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다양한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