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가의 하소연 “창작 대신 탈락 통보…행정이 예술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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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지역 예술가의 하소연 “창작 대신 탈락 통보…행정이 예술 죽인다”
●제21대 대선 ‘호남 민심을 듣는다’
유권자 릴레이 인터뷰<4>문화연구가 정현우씨
대선 후보들, 문화예술 공약 실종
콘텐츠 산업 치중…순수예술 쇠락
“새 정부, 공공재 기능 문화정책을”
  • 입력 : 2025. 05.29(목) 18:04
  • 박소영 기자 soyeong.park@jnilbo.com
호남에서 활동 중인 정현우 문화연구가는 6·3대선을 앞두고 보여주기 위한 정책이 아닌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창작하며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새 정부는 문화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작업하던 청년 예술가들은 대부분 서울로 떠났어요. 남은 이들도 창작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도 예술가로 살 수 있어야 해요.”

광주광역시에서 문화예술을 기획하고 연구하며, 청년 예술가들과의 공동작업을 이어온 정현우(32) 문화연구가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예술 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꼬집었다. 단순히 지원 부족의 문제가 아닌 정책 구조가 예술가를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작이 가능한 환경이 아닌 정부나 지자체의 제도를 통과한 사람만 예술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문화예술 분야 정책에 힘을 쏟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 예산 증폭이나, 지원 확대 등 정량적 공약을 보면 그렇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문화 관련 시장 규모 300조원·문화수출 50조원 시대를 만들겠다 했으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세제 혜택 등 콘텐츠 생태계를 성장시키겠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위한 공약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가는 “예술가 한 사람이 지역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그의 창작을 뒷받침해 줄 만한 복지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예산 확대도 분명 필요한 일이나,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없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행정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예술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가는 지방 예술가들의 이탈이 단순한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은 기회와 인프라가 몰려 있는 곳이다. 어떻게든 작품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다. 반면 지역은 창작 환경과 지원에도 허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창작준비지원금 등 예술인 복지제도는 매년 수천 명이 몰리는 경쟁형 공모로 진행된다. 열심히 활동한 사람일수록 탈락하는 역설이 반복된다.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타 지원금 이력이 많으면 오히려 불이익이 생긴다”며 “이건 예술가들의 행정 적응력 문제가 아니라 예술 생존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생애 첫 지원’과 같은 항목에서 기성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이력 기재를 생략하거나 우회하는 사례가 많아 청년 예술가들이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처음으로 지원을 받으려는 청년에게 열려 있어야 할 문이, 오히려 누군가의 ‘두 번째 삶’을 위한 뒷문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가는 국가와 지자체가 순수예술을 등진 채 AI나 미디어 기반 산업 쪽으로만 행정을 쏟고 있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AI나 미디어 기반 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도시 전체의 문화예산이 기술과 융복합에 쏠리면서 정작 광주의 뿌리를 지켜온 예술 장르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기술 기반 융합예술만이 지원의 중심이 되면 결국 도시의 문화 정체성도 사라지게 된다. 예향 광주라는 말이 보여주기 위한 문구로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정 연구가는 “예술가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창조적 행위이자 사회의 ‘화재경보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예술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으나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문제를 경고하는 감각 장치다. 장애·젠더·지역 불균형 등 다양한 현실 문제를 드러내고 숙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며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삶의 질과 공동체 감수성을 높이는 공공재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기에 새 정부의 문화철학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yeong.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