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는 왜 집단지성의 힘을 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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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
빌게이츠는 왜 집단지성의 힘을 빌렸을까?
CR은 씨앗-창의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씨앗이다
  • 입력 : 2021. 09.23(목) 18:02
  • 김홍탁 CCO

1.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이하 빌 게이츠 재단)의 초청을 받아 재단이 있는 시애틀에 도착한 것은 2012년 11월이었다. 평소 저개발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빌 게이츠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던 터라 그에게서 초청을 받는다는 사실은 명예롭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짐을 풀고 재단에서 마련한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초청받은 14명의 심사위원 겸 멘토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삼삼오오 살아가던 얘기를 나누며 시애틀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그 중 근래에 애플의 글로벌 CCO(Chief Creative Officer)로 자리를 옮긴 닉로(Nick Law)와 오랜 기간 상하이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싱가폴로 거처를 옮긴 하쿠호도(Hakuhodo)의 글로벌 CCO 양야오(Yang Yeo)는 당시 첫 만남의 우정을 키우며 아직도 각별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

특히 2015년 닉로를 한국에 초청해 스피치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행사 후 그를 데리고 비무장지대 땅굴 투어를 했던 추억이 있다. "내 인생에 가장 유니크한 추억이 될거야." 투어 후 그가 한 말이었다.

빌 게이츠 재단에 모인 14명의 심사위원. 사진 아랫줄 맨 왼쪽이 필자.

2. 빌 게이츠는 세계 3대 광고·크리에이티브 축제 중 하나인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와 손잡고 2012년에 '칸 키메라(Cannes Chimera)'라는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최종 선정된 10개 팀에 각각 10만 달러를 지원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과제는 저개발국가의 건강, 위생, 발전을 위한 솔루션 개발.

빌 게이츠 재단은 아이디어를 심사하고 제안자들과 함께 그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솔루션으로 숙성시킬 전문가들이 필요했기에 칸 라이언즈와 함께 프로젝트를 론칭했고, 올해로 67주년을 맞이한 칸 라이언즈는 창의적 솔루션을 만들어온 14명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해 그 명단을 빌 게이츠 재단과 공유했다. 내가 시애틀에 발을 딛게 된 계기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 행사가 의미있는 것은 빈곤, 기아, 질병, 환경, 인권, 균형발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UN같은 국제기구 또는 NGO만의 노력과 경험으로는 힘에 부치기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 실행했다는 데 있다. 사실 솔루션은 일반인들도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국제기구나 NGO는 그 분야에서 쌓은 데이터와 경험은 많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오던 방식을 반복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들의 원조업무가 현장에서 악용되는 상황까지 목격됐다.

사례를 들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모기장을 제공했는데, 그 모기장이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고 누군가의 손을 거쳐 시장에서 팔리는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프리카에 퍼져 있는 에이즈에 대한 대책도 문제다. 단순히 콘돔을 나눠주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청년들이 그것을 사용하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콘돔 착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몰라라 하는 그들의 습관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나눠주는 게 능사가 아니고 아프리카 청년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 동시에 여성들이 원치 않은 성관계에 'Say No'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빌 게이츠와 칸 라이언즈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칸 키메라는 빌 게이츠와 칸 라이언즈 같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리더, 전문성을 가진 심사위원, 그리고 일반인의 지성과 열정의 참여가 빚어내는 집단지성의 현장이었다.

 놀랐던 것은 칸 키메라 프로젝트가 그렇게 크게 홍보되지 않았을 당시 1회 행사에 전 세계 85개국으로부터 914편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는 사실이다. 한 팀당 4~5명이 모여 문제해결을 위해 며칠을 머리를 맞댔을 생각을 하니 심사를 하는 내내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선정된 심사위원 14명은 우선 각 지역에서 1차 온라인 심사를 통해 10개의 팀을 선발했다. 선발된 팀은 시애틀의 빌 게이츠 재단에 모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했고, 그 곳에 모인 심사위원들과 워크숍을 통해 더욱 숙성된 솔루션으로 다듬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10개 팀이 돌아가며 14명의 심사위원을 방문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방식이었다.

3. 10개 팀의 아이디어 발표와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솔루션이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개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 중 내가 전혀 예상 못했던 아이디어 두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보스톤 대학(Boston University) 교수와 케냐의 대학 교수가 협력해 제시한 아이디어였다. 그 팀의 아이디어는 케냐의 청년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여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게 코칭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도움을 받는 저개발국가에선 그들의 상황이 선진국의 관점으로 해석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호혜적인 관점의 해석이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의 깊은 디테일까지 포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팀의 임무는 학생들이 운영하는 뉴스룸을 만드는 것이었다. 케냐의 청년들 스스로 건강과 보건에 대한 현장의 문제점을 찾고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것을 영상 콘텐츠에 담아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훈련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콘셉트를 잡고,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여 완성된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확산시킬 미디어 전략을 생각해내야 한다.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제기구 활동이 학교나 병원 등의 시설을 지어주고, 필요한 음식을 공급하고, 약을 제공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등 원조가 핵심인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방법이 채택되면, 청년들이 그들이 처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들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지지했다. 특히 공중 보건 개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끌어내고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차세대 스토리텔러를 길러낼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자립의 불씨를 키울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퍼주는 원조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해결책은 현지에서 창출되어야 하고 플랫폼화 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아이디어는 네덜란드의 자선단체 '1%클럽'의 아이디어였다. NGO는 대부분의 활동 자금을 기부금에 의존하는데, 사실 기부하는 입장에선 자신의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단체는 원조 업무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모니터하고 평가하는 모바일 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도움받는 사람들의 생활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주고 생활 개선의 지표를 만들어 데이터를 공개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에 대한 투명한 피드백을 주자는 취지다. 기부금이 더 모이려면 투여 대비 개선의 여부를 쉽고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당시 이 앱이 발전적으로 확장되면 모든 NGO 활동의 투명성도 높아질 것이고 나아가 투명한 기부 문화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아이디어 모두 기존의 방식이 간과해왔던, 그러나 꼭 필요하고 새로운 솔루션 개발의 방식을 제안한 사례였다. 만약 전 세계인들로 부터 아이디어를 공모받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사이트를 접할 수 없었을거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칸 키메라를 벤치마킹하여 '국가발전 프로젝트 공모전'이라는 아이디어 오디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SK회장이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회장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 역시 민간이 주도해 친환경, 청년문제, 신기술 개발 등의 솔루션을 만들어보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수상자에게 총 2억2900만원의 상금(대상 1억원)과 함께 당선된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이어지면 해당 사업의 지분을 최대 4.5%를 제공하는 기획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좋은 생각과 의미있는 기획은 널리 퍼져나가 지역 특성에 맞는 플랫폼으로 확산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선발된 10개 팀의 프레젠테이션

멘토링 워크숍 세션

4. 행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빌 게이츠는 어떤 이유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걸까?" 빌 게이츠는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재단을 설립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저개발국의 빈곤, 건강, 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찾기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깨진 독에 물붓듯 끊임없는 자원과 재원의 소모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현장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원제 : Inside Bill's Brain)'를 보면 그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찾으려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방법이 일반인과 크리에이터의 집단지성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을 거라는 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요즘엔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기업들도 문제 해결을 위해 소비자와 마케터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해커톤을 열고 프로토타입을 만든 후 그 솔루션을 세상에 선보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프로세스를 거쳐 신체절단 장애인도 활용할 수 있는 X-Box 게임기의 콘트롤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칸 키메라의 참여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공고하게 만드는 여정이기도 했다. 코로나19같은 뜻밖의 재앙이 발생하고 환경문제는 개선될 낌새가 안보인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환경악당이라는 국제적 오명을 쓰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기에 그에 최적화된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세상을 돕기 위해 당신의 창의력을 활용하라(Use your creativity to help)." 이 선언적 문구는 빌 게이츠 재단 뮤지엄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마주치게 되는 문구다. 지구와 인간이 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도울거면 도움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마지막 날 클로징 세리머니

김홍탁/

-전남일보 총괄 콘텐츠 디렉터

-전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 그룹 마스터

-Cannes Lions, New York One Show, London International

Awards, Adfest, Spikes Asia 등 국제 광고·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

수상, 심사, 스피치

-[빌게이츠재단+Cannes Lions], [UN+One Show] 주관

지속가능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에 심사위원·멘토로 초빙

김홍탁 CCO khong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