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고려말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이 읊은 매화시이다. 매화를 노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로 알려져 있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골짜기는 필시 고려말의 혼란기를 뜻하는 것이다. 혼란의 구름이 머물러 있으니 눈 속에 피는 설중매를 마주할 길이 없다. 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나라의 혼란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석양에 홀로 청청하게 서 있었다는 행간을 읽으면, 깊은 눈 속에 매화가 피어있듯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와중의 격변을 그려볼 수 있다. 그저 눈 속에 피는 한 송이 매화를 읊은 것이 아니다. 이색이 누구인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더불어 삼은(三...
편집에디터2022.02.03 17:14얼마 전 득량만 수문리 선창가에서 유령제가 있었다 6.25 직후 있었던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 유령제다 장흥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유재성을 비롯한 장흥 지역의 40여명이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이라는 덫에 결려 별빛조차 희미한 심야에 굴비 엮듯 결박되어 끌려가 득량만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그 시간에 수문리 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개구리가 떼로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득량만 바다가 안다 이제야 목 놓아 울 수 있는 것인가 늦었지만, 너무도 늦었지만 좌우를 떠나 무고하게 돌아가신 모든 이들을 해원하는 ...
편집에디터2022.02.03 15:52광주 중외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과 숭모비 1961년 광주공원에 건립된 안 의사 숭모비 이근준씨 집으로 옮겨진 숭모비 중외공원에 재 건립된 안 의사 숭모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빅 데이터 1위 1910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를 격살한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그는 처음부터 무장투쟁론자가 아니었다. 1907년까지만 해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운영하며 교육 운동에 전념했던 애국계몽운동가였다. 1908년 안중근은 아버지 친구의 조언을 듣고 만주의 명동촌·용정·훈춘을 거쳐 연해주 연추(현 추카노보)에 들어가 최재형·이범윤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동의회의 의병장이 되어 국내진공작전을 벌였다. 1909년 2월(음력)에는 11명의 동지와 함께 약지를 잘라 하늘에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할 것을 맹...
편집에디터2022.02.02 16:48해녀벽화. 차노휘 바람의 길 제주올레 마무리 여행을 떠났다. 2020년 연말에 시작했으니 거의 1년 넘게 걸었던 셈이다. 일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냈기에 일상의 활력소 같은 걸음이었다. 제주도 내에서 걷는 코스가 1부터 21코스라면(7-1, 14-1 포함 총 23코스) 제주도 부속 섬인 우도(1-1), 가파도(10-1), 추자도(18-1)를 더하면 총 26코스가 된다. 도상거리 425m이다. 빈번하게 다니다보니 조력자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생기기도 했다. 제주도 모 고등학교 모 회 동창회 모임 회원들이다. 친교로 일주일마다 걷기를 하는 단체인데 몇 년 전 영실에 함께 다녀온 뒤부터 인연이 되어 간혹 제주도로 떠나기 전, 코로나 상황의 제주도 소식을 전해 듣거나 날짜가 맞으면 함께 걷기도 했다. 이번 김녕서포구에서 시작하는 올레도 함께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내 코스에 맞춰주었다는 ...
편집에디터2022.01.27 17:26범 내려 온다. 범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개같은 뒷다리, 전통같은 앞다리, 쇠날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 헤치며 주홍입 떡 벌리고 자라 앞에 가 우뚝 서서 흥앵흥앵 하는 소리 산천이 뒤엎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 움츠리고 가만히 엎졌을 때. 이날치 밴드가 불러서 일약 국민가요가 된 '범 내려온다' 대목이다. 판소리 수궁가 중 한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임방울이 불러 국민가요가 ...
편집에디터2022.01.27 15:05마을의 담장 벽화. 유팽로의 창의를 주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합강(合江)'이란 지명이 여기저기에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두 갈래 이상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한 곳이 곡성 합강이다. 마을을 옥출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옥과천과 순창에서 흘러 내려온 섬진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배산임수의 지형 그대로다. 마을 앞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독메산의 이름을 따서 '도리산(道裡山)'으로도 불린다. 옥과군 수대곡면, 창평군 수면을 거쳐 지금은 '골짝나라' 곡성군의 옥과면에 소속됐다. 예부터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이고, 음양이 어우러지면 생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얘기다. 곡성 합강은 의미가 더 깊다. 군계(郡界)이면서 도계(道界)에 해당된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
편집에디터2022.01.27 15:10동이 트기도 전에 어둠을 뚫고 산길을 올랐다 경주 남산의 신선암 마애불을 찾아가는 초행길이다 칠불암에도 아직 이른 시각인지 목탁소리가 없다 바윗돌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르며 얼마쯤 왔을까나 숨이 좀 차는 가 싶을 때 동쪽 하늘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고 시야가 트이는 곳에 큰 바위 몇 개 그 밑에서 뭔가의 움직임이 있어 보니 놀랍게도 사람들이었다 그 이른 시각에 두 여인네가 먼저 와 자리하고 있었던 것 운이 좋았던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동해에서 떠 오르는 아침 해의 첫 햇살이 마애불에 닿는 순간 우주의 기운이 온 천지로 ...
편집에디터2022.01.20 15:02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백두대간은 학문 각 분야의 관심과 연구를 통섭적으로 아우르는 '백두대간학'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최원석, 산의 인문학,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으로). 이는 지난 30년 동안 인문, 사회, 자연과학 각 분야에서 백두대간 관련 논문과 보고서, 단행본 등이 무려 1,500여 편이나 나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통일시대에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지리교과서 및 백두대간 지명사전, 백두대간 지도 편찬, '백두대간학'으로의 발전 등...
편집에디터2022.01.20 16:24너븐숭이4·3기념관 내부. 차노휘 이야기 다섯 - 너븐숭이4·3기념관 올레19코스는 제주 항일운동의 현장인 조천만세동산에서 시작된다. 장엄하게 서 있는 추모탑과 운동기념탑 뒤쪽 밭길을 걷다보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해안도로는 곧 조천포구 길목에 있는 관곶과 만나게 되고 관곶은 넓은 백사장이 있는 신흥해수욕장까지 연결된다. 신흥리 마을길을 지나면 드디어 함덕서우봉해변에 닿는다. 도심과 가까운 함덕해변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곱고 흰 모래사장이 바다 멀리까지 뻗어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서우봉(111.3m)을 감싸면서 먼 바다로 이어진다.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모양새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에 해수욕을 즐겼다면 겨울에는 해변을 등 뒤로 하면서 하이킹하는 것도 좋다. 약간의 오르막길과 숲 사이로 난 길은 2003년부터 2년 동안 동네 이...
편집에디터2022.01.13 17:33담양천변 뚝방마을 풍경. 관방제와 관방제림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이돈삼 가분수다. 얼굴이 몸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가 선명하다. 얼굴 가득 엷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정겹다. 돌로 다듬은 작은 석인(石人)이다. 그것도 2기가 가까이서 마주 보고 있다. 오른쪽이 할아버지다. 맞은편의 할머니보다 더 크다. 머리에 원유관(遠遺冠)을 쓰고 있다. 옛날에 지체 높은 사람이 쓰던 모자다. 얼굴에선 두꺼운 입술과 코가 도드라졌다. 눈은 움푹 패어있다. 턱 밑에 수염이 역삼각으로 길게 내려와 있다. 얼굴에서 인자함이 묻어난다. 왼편은 할머니다. 머리에 탕건을 썼다. 상대적으로 눈과 코, 입 등이 많이 닳았다. 얼굴 표정에는 인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담양읍에 있는 석인상(石人像) 얘기다. 석인상은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뚝방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1838년...
편집에디터2022.01.13 16:20고려뱃길 시험탐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통신사선. 이윤선 흑수양(黑水洋)은 북쪽 바다이다. 점점 깊숙이 들어갈수록 물빛은 진한 먹처럼 검은색이었다. 갑자기 그것을 보면 정신과 담력을 모두 잃게 된다. 성난 파도가 뿜어내는 것이 우뚝 솟은 만산과 같고, 밤이 되면 파도 사이가 불처럼 밝게 빛난다. 배가 파도 위로 올라갈 때는 바다가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밝은 해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배가 내려가 파도 밑에 있을 때 전후의 수세를 바라보면 높이 하늘을 가리며 위장이 뒤집히고, 헐떡거리는 숨만이 겨우 남아있어 쓰러져 구토하고, 먹은 음식(粒)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요 위에 피곤해 누워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사방을 높이 올려 구유(槽)와 같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울어져 이리저리 굴러 몸을 다치게 된다. 이 때에 몸이 만 번 죽을 수 있는 고비에서 벗어나길 바...
편집에디터2022.01.13 16:242021. 11. 21. 광주광산농악 한마당. 이윤선 한강의 끝자락 조강포에서 터울림을 한 것이 4년 전이다. 주지하듯이 조강포는 마금포, 강령포와 더불어 한강 하류의 3대 포구였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의 염하(鹽河)가 만나 한길을 이루고 서해로 접어드는 물길이다. 전라 충청의 모든 물류가 한양으로 나들던 길목이요 대중국 교류의 대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쉬었다가 한물을 올라가면 서울 마포다. 지금은 철책으로 막아버려 북쪽 땅끝이 되어버린 곳이다. 2018년 당시 나는 이곳을 중심으로 풍물활동을 하던 노나메기팀과 합류하여 조강포 나루표지석 앞에서 신년 마당밟이를 하였다. 땅을 울리니 터울림이요 바람을 더불어 울리니 공명(共鳴)이었다. 아시아문화연구원 김용국 원장과 만나 내가 제안을 하였고, 노나메기 대표가 응대하여 이루어진 쾌거였다. 분단 이후 최초로 조강포를 울렸던 쇠북소...
편집에디터2022.01.06 14:39아득한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나를 불러내는 것들이 있어 지금껏 방황케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말하는 바다와 같은 호수 '바이칼'도 그 중의 하나다. 몽골리언의 시원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외관상 조그마한 바위투성이일 뿐인 호반의 '부르한' 바위가 그 최고의 성지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샤먼들이 북을 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제(祭)를 올렸던 곳이기에 몽골리언의 일원으로 그 경건함을 되새겨 본다. 이곳은 또한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상고 시대의 '한국'을 열었던 ...
편집에디터2022.01.06 14:17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태초에 천지가 혼돈이었다는데요/ 하늘에서 청이슬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 솟아나/ 음양 상통 합수되어 만물이 생겨났드랍니다./ 천황닭 목을 들고 지황닭 날개를 치니/ 인황닭 꼬리쳐 울어 갑을동방 먼동이 터온 게지요./ 그뿐이것습니까. 궤짝에서 태어난 알지 말입니다./ 구름 속 황금상자 자색구름 타고 내려오는디/ 아, 순백의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호공이 아뢰니 왕이 친히 나가 상자를 열었는디/ 떡두꺼비 같은 아이가 울고 있어 알지라 불렀다지요./ 온 세상 물에 잠기게 되었을 적 계봉 꼭대기/ 딱 닭 한 마리 앉을 자리 남아있었기에 닭제산 아닙니까./ 닭벼슬 관모 자라 주작되고 봉황되었는디/ 어디 삼족오가 따로 있고 백제금동향로가 따로 있겄습니까/ 사우 자시라고 장모님 잡는 닭이 주작이고 삼족오인게지요./ 경주 천마총 수십 개의 계...
편집에디터2021.12.30 16:20제주도의 밤 이야기 넷- 제주도의 밤이 무르 익어가는 시간 밤이 되면서 비바람이 연신 낮은 지붕을 쓸고 가는 소리가 거세진다. 동네 어귀에 있는 헐벗은 당산나무가 둔하게 몸을 비튼다. 뒷마당에 걸쳐진 이중 빨랫줄이 거센 바람에 겨워 윙윙 소리 내 운다. 눈보라 치는 제주도의 시골 밤은 일찍 내리고 오밀조밀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모인 객들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처럼 그들이 겪었던 '무용담'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일반 단층 주택을 개조했다. 방 세 개가 복도를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다. 2인실이 기본인데 한 사람 당 3만원을 받는다. 조식 포함이다. 주인 남자가 직접 요리한 음식이 개인 쟁반에 밥과 반찬 몇 가지로 아주 깔끔하게 제공된다. 30대 중반의 키 큰 미남형 주인은 서울에서 이주해온 이주민이며 신혼이다. 신혼집은...
편집에디터2021.12.30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