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고산서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장안만목(長安萬目)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장안(서울)에 있는 1만 개의 눈이 장성에 있는 하나의 눈만 못하다'는 말이다. 청나라 사신이 낸 문제를, 학식 높다고 뽐내던 서울사람들이 풀지 못했다. 대신, 장성에 사는 애꾸눈의 기정진이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에서 태어난 기정진(1798~1879)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한쪽 시력을 잃었다. 기정진은 7살 때 시를 지으면서 '천재'로 불렸다. 고산마을 풍경. 마을이 불태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돈삼 노사 기정진은 1862년 국정의 폐해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한 상소 '임술의책(壬戌擬策)'을 올렸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을 다섯 가지 개혁안을 담았다. 사대부의 도덕적 해이와 특권의식도 비판했다. 기정...
편집에디터2021.09.09 16:45밭담길. 차노휘 1)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만들어진 길 오늘도 나는 다시 걷는다. 발에 착 감기는 신발 밑창으로 흙을 밟으면 종아리와 허벅지 안쪽 근육이 당겨진다. 양팔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면 머리는 수많은 생각들로 술렁거린다. 마침내 묵어있던 것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온 몸은 박하사탕을 입안에 넣은 것처럼 환해진다. 한줄기 땀이 목덜미를 따라 등골로 흐르면 뺨은 붉게 물든다. 이마를 훔치는 한줌의 소금기 품은 바람,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잘 마른 생선 같은 고슬고슬한 햇살… 내 발걸음은 용수리 돌담길에서 시작해서 중산간 숲길로 향한다. 마침내 올레 26코스 절반인 13코스에 들어선 것이다. 2007년 9월, 시흥리의 작은 초등학교에 삼삼오오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모여서 발걸음을 뗀 것이 제주올레의 시작이었고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닦아놓은 그 길 위에 내...
편집에디터2021.09.09 15:55양건당 황대중 충효추모비 황대중 시신을 옮긴 말 무덤 양건당 황대중 충효정려 '양건려' 양건당 황대중 '충신·효자' 정려 편액 황대중, 두 다리를 절다 황대중(黃大中, 1551~1597)의 호는 양건당(兩蹇堂)이다. 양건당의 '건'은 '절다'라는 뜻이니, 양건은 두 다리를 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두 다리를 절게 된 사연이 기가 막힌다. 황대중이 왼쪽 다리를 절게 된 것은 그의 지극한 효성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 강씨가 학질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황대중은 자신의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 어머니의 약으로 쓰게 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된다. 이후 사람들은 황대중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를 '효건(孝蹇)' 즉, '효성의 절름발이'라 불렀다. 황대중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의 효심이 알려져 십리 밖까지 조문객의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의 효성이...
편집에디터2021.09.08 14:50조오환 오하이 주립대학 강의. 2013년 진도민속예술단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이란다 정말 싸다 파는 엿/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석달 열흘 백일삼제/ 화초가리 더덕가리 동삼가리가 다 들어간 엿/ 열아홉살 먹은 크내기가 동삼물로 제조를 했다 지름이 찍찍 흐른다~" 2009년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식 발표회 장면 중 하나, 객석의 뒷자리에서 갑자기 엿판을 든 엿장수가 등장하더니 관객들을 훑으며 무대로 올라온다. 엿가위로 리듬을 맞추며 해학적인 엿타령을 구수하게 뽑아낸다. 저자에 흘러 다니는 말은 '엿장시 맘대로'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격조 있고 운율 있는 노래이니 '엿장수 가락'이라고나 할까. 무대에 오르자 걸쭉한 입담이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이어진다. "에, 이 엿장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진도에서 올라온 엿장시인디, 오늘 엿을 쪼깐 많이 폴아서 진도 갈...
편집에디터2021.09.02 15:34최근 미술관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증강현실 UVR랩 연구진과 지역 초등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여름방학 '양림어린이예술학교'를 운영했다. 이번 교육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초중등 교과과정에서 의무화된 '코딩(coding)' 프로그램을 미디어아트(미디어작가)와 결합하여 3D로 구현하고, 컴퓨터 프로세싱 언어를 조합해 나만의 비주얼 아트를 제작하는 과정으로 를 진행하였다. 수업과정 중 우리는 다 같이 제페토(ZEPETO)에 가입했고, 일상이 무너진 현실이 아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한 가상공간의 메타버스에서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 제페토는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핫한 키워드인 '메타버스(가공 혹은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다차원 가상세계를 뜻함)의 ...
편집에디터2021.08.29 15:05영혼을 맑게 한다는 수미산 순례 길. 트럭의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갔다. 몇 날인가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부 티벳의 황량한 대지를 떠돌고 있자니 이제 내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영혼을 위한 구도의 길에서는 자신을 버려라 했던가. 어느 만큼 왔을까. 아무 것도 없는 노천에서 온천수가 품어 나오며 광야를 적시고 있었다. 떠도는 영혼을 위한 쉼터 같다고나 할까. 추위에 웅크렸던 몸을 펴고, 뒤범벅이 된 먼지를 씻으며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구 밖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야릇한 시간이었다. 다시 길을 ...
편집에디터2021.09.02 12:56개의 친밀감에 대하여 개가 얼마나 친밀한 존재이고 심성적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몇 차례 장그르니에를 인용해 소개한 적이 있다(장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민음사, 1997).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개의 부류는 '친밀감'을 속성으로 한다. 인간의 친구인 개, 인간이 얻은 가장 고상한 피정복물 아니 지금은 동맹관계로 바뀌어버린 말(馬), 흔히 무고한 희생물의 대명사로 사용되기까지 하는 비둘기, 이 동물들만큼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없다. 토끼를 비롯한 다른 몇 동물들도 이 부류에 포함 시킬 수 있을까. 인간은 친밀감...
편집에디터2021.08.26 16:34전망대가 보이는 풍경. 차노휘 코로나시국의 여행은 귀국하고 나서도 자가격리가 끝나야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가 있다. 각 나라마다 방역검사도 다르다. 존에프케네디공항에 없는 것이 인천공항에는 있었다. 일명 K방역이었다. 인천공항에서의 K방역은 철저했다. 비행기에서 공항 건물로 진입했을 때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바리게이트처럼 통로를 막은 방역관리사였다. 귀국 72시간 안에 뉴욕에서 받은 PCR 음성 판정 서류와 여행 전 접종했던 백신 확인증을 제출해야 했다. 뉴욕으로 떠나기 17일 전인 6월 10일에 얀센 백신을 맞았다. 17일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것은, 백신을 접종하고 항체가 생긴다는 2주 후에 출국해야 귀국했을 때 자가격리면제 대상이라는 방침 때문이다. 두 가지 서류를 꼼꼼하게 살피던 방역관리사는 여권 표지에 방역확인증과 자가격리면제라는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면제자는 공항...
편집에디터2021.08.26 16:33고막마을 표지석. 마을의 상징이 된 돌다리가 마을이름과 어우러져 있다. 이돈삼 "너, 고막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그렇게 말 안 들으면, 고막다리 밑에다 버려 버린다." "웬수 같은 ×, 다리 밑에 있는 니 엄마한테 다시 가라." 중장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다. 옛날 어른들은 그랬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심하게 울면 '다리 밑'을 들먹였다. 그 말을 자주 들은 한 아이는, 진짜 보따리를 싸 들고 다리 밑으로 가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옛 추억 속의 이야기다. 고막대사를 등장시킨 돌다리 벽화. 고막마을회관 앞 벽에 그려져 있다. 이돈삼 고막마을 고막천의 팽나무. 수령 2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돈삼 그 이야기 속의 다리다. 함평 고막천 석교, 이른바 '고막다리'다. 장성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월야·나산을 거쳐 ...
편집에디터2021.08.26 16:32대구감옥 출감 후 동지들과 달성공원에서의 찍은 기념사진(1922. 9). 왼쪽부터 김태열, 최한영, 김범수, 김기형, 최정두, 서정희, 박일구, 최병준, 김복현 광주 3·1운동에 불을 지핀 김범수 선생 924년 11월 17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남선의원 개업 기사 광주 3·1운동의 견인차가 되다 광주 3·1독립만세 시위에 붙을 지핀 인물은 광주 출신의 경성의전 학생 김범수였다. 김범수(金範洙, 1899~ 1951)는 1899년 광주광역시 광산군 서방면 신안리 335-1번지, '재매마을'에서 부친 김영관과 모친 최훈의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 북구 신안동으로, 도로명 주소로는 북구 서암대로 93번지이다. 김범수는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경성의전)에 입학한 수재였지만, 이전에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우 언수가 광주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
편집에디터2021.08.25 16:47"한 깊은 시인의 숨결에 묻어나는 삶의 성찰과 인문학적 상상력", "남도 문화의 숨결과 고전 계승을 담은 토속적 시편들", 이번에 펴낸 졸저 에 붙인 출판사와 서점들의 카피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 선생은 이런 표사(表辭)를 써주셨다. "이윤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고여 자칫 글자를 놓치고는 하였다. 일자무식으로 평생을 살아낸 늙은 아버지와 일찍이 홀어미가 되어 세 남매를 거느리고 선창의 주모 노릇을 하다가 씨받이까지 된 어머니, 그 씨를 받아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길러낸 큰어머니, 배다른 누이들...
편집에디터2021.08.19 16:58아프가니스탄이 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군의 침공으로 무너진 탈레반 정권이 20년의 끈질긴 투쟁 끝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내전과 외세의 침략으로 초토화 된지 오래지만 영국과 소련에 이어 이번에는 그 잘난 미국까지도 손을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비귀환이 된 이번 카불의 함락이 1975년에 있었던 베트남 사이공의 함락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에 보잘 것 없어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이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강대국들의 수렁인 것이다. 겉으론 세계 평화를 외치지만 국...
편집에디터2021.08.19 12:44바셀. 차노휘 맨해튼 거리를 걷다보면 무료 코로나 검사 부스를 종종 본다. 나도 검사를 한번 받아볼까 하다가 검사 받고 기다리는 그 초조한 시간이 싫어서 그냥 지나치곤 했다. 사람이 많은 타임스 스퀘어 같은 곳에는 부스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 내에서는 백신 접종 부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코로나와 관련된 부스를 발견할 때마다 기록 삼아 사진을 찍어 두었다. 부스를 확대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부스 운영 홈페이지 주소를 발견했다. 검색해보니 유료인 CtiyMD와 달리 어떤 코로나 검사도 무료이다. 친절하게 센터 몇 군데 주소와 영업시간까지 적어 두었다. 이곳에서 검사받고 안전 귀국한 한국 사람들이 꽤 있다는 블로그 소개글이 있었다. 뉴욕은 다양한 얼굴이 상존한다. 예약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은 의료 센터가 있는가 하면 전액이 무료인 곳이 있다. 주거지 또한 원룸...
편집에디터2021.08.12 15:28말레이시아 말라카 정화박물관에 전시된 정화선단 모형도. 이윤선 말라카 황징항(皇京港)에서 마조해협까지 오래전 중국 복건성 천주시에 갔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 있다. 신라여관, 신라 주유소, 신라 다리 등 신라라는 수식을 건 간판이나 이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적화원이라는 절을 복원하여 관광지가 된 산둥반도 석도진을 포함해 신라관,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의 거점이 천주시를 위시한 복건성 지역이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3년여 오가며 현장조사를 했던 절강성 주산군도의 보타도 앞에는 심지어 '신라초'라는 이름의 암초가 있다. 얼마나 많은 신라의 배들이 이곳에 부딪혔으면 신라초(新羅礁)라는 이름을 붙였겠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신라 사공(선장)들이 배를 몰고 이곳을 지나다녔으면 이같은 이름을 붙였겠는가. 물론 신라초에는 신라로 싣고 오려던 관음불과 관련된 몇 가지 설화...
편집에디터2021.08.12 15:27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 가고,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분홍 꽃으로 100일 동안 유혹하는 꽃이 있다. 꽃 한 송이가 100일 동안 활짝 피어있는 건 아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은 명옥헌원림이 압권이다. 붉은 꽃너울이 누정 앞 연못에 비쳐 반영되는 풍경도 매혹적이다. 하여, 여기 배롱나무꽃은 두 번 봐야 한다. 꽃이 활짝 피어 꽃너울을 이룰 때, 그리고 꽃잎이 떨어져 연못에 가득할 때다. 명옥헌. 원림을 한눈에 내...
편집에디터2021.08.12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