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 막는 '계약 재배' 실천이 농업의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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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축협·산림조합
"과잉생산 막는 '계약 재배' 실천이 농업의 살 길"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 위해 뛴다-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15년째 모든 품종 전량 계약재배 추진 농가소득 일조||'정부 의존' 탈피 위해 전국 최초로 농업발전기금 조성||"최고 품질로 키운 농산물이 제값 받는 것이 선진농업”
  • 입력 : 2019. 06.03(월) 16:44
  • 김성수 기자
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은 농협이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을 때 농업을 이끄는 농민이 잘사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잉생산'은 농촌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악재다. 적정재배 유도로 안정된 농작물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계약재배'를 실천하는 게 농업의 살길입니다."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의 호소다. 영광농협은 15년 전부터 조합원이 재배하는 모든 품종 전량 계약재배를 추진·정착시킨 저력을 갖고 있다.

영광농협에서 40년 넘게 몸담아온 정길수 조합장은 "농협을 믿고 정성껏 키워낸 농산물을 전량 계약재배 해주신 조합원들에게 늘 감사하다"면서 "하지만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버겁다. 우리 농촌 현실은 농산물 수급조절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매년 과잉생산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계약재배를 잘 지키는 우리 조합 같은 곳만 선의의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정 조합장은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는 날씨의 영향이 크다. 날씨는 예측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매번 날씨 탓만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풍년이 들면 생산량이 급증해 농산물 가격하락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매년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와 농협이 적정재배를 유도해 계약재배를 정착시킨다면 가격하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양파가격이 폭락했다. 작황이 너무 좋아 생산량이 급증했지만, 과잉생산도 한몫했다. 뉴질랜드의 경우 양파 재배를 위해서는 전국 양파협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재배가 가능하다. 그만큼 철저하게 적정재배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영광농협도 조합원 95%가 계약재배를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조합장은 농협의 역할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생산은 농촌, 소비는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농산물 유통에 있어 농협은 롯데마트, 이마트 등과 비교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농협중앙회가 서둘러 소매 유통 체계를 구축했다면 지금쯤 정착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도시농협은 시골농협의 농산물을 판매해주는 거점 역할을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도시농협은 신용사업을 통해 성장하고 있어 농산물 판매에 소홀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농촌농협을 위해서라도 농산물 판매에 좀 더 힘써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 조합장은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농협과 조합원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광농협이 전국 최초로 조성한 '농업발전기금'이다. 농협과 농가가 매년 5억원씩 적립해 농산물 가격하락 시 보전해주는 기금이다.

정 조합장은 "올해는 쌀 위주에서 벗어나 고추도 발전기금 행태로 농가와 농협이 서로 기금을 조성, 내년부터 가격보전 등의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며 "농업발전기금은 농가 지원금 외에도 농산물 시설 인프라 구축, 고구마 등 새 품종 개발 비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조합장은 요즘 대세인 청년 농업인 육성, 로컬푸드 매장 신설에 대해서도 남다른 시각을 보였다.

정 조합장은 "청년 농업인 육성에 앞서 고령인 원로 조합원부터 챙기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로 조합원은 부모와 같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는 건 도리다. 연세가 많아 조합원을 탈퇴했더라도 조합원과 같은 혜택을 주도록 '특별 조합원' 제도를 신설할 계획이다"며 "이런 노력 뒤에 청년조합원 육성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로컬푸드 매장 신설에도 신중함을 보였다. 그는 "농가소득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농업의 지속성 확대 등의 파급효과가 나타나면서 로컬푸드의 필요성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로컬푸드 직매장 개설이 농촌형 농협에 획기적인 소득 보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만남이 아닌 로컬푸드 직매장을 통해 도시농협 연계 납품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매장 중심의 유통에서 공공급식 등 영역 확대가 이뤄진다면 성공적인 로컬푸드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정 조합장의 주장이다.

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이 고수하는 '기본과 원칙'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반칙문화'에 울리는 경종과도 같다.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장밋빛 청사진만 내놓는 선출직 조합장 선거문화, 막무가내식으로 목소리만 높이는 소수가 '갑'이 되는 문화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가격 폭락으로 수억 원의 적자를 무릅쓰고 영광농협의 대표정책인 계약재배를 정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쓴소리를 감내해야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정 조합장은 "농산물 가격 폭락과 폭등으로 돈을 버는 건 후진국이다. 농산물의 가치는 시장의 가격 상승이라는 운에 결정되는 게 아니다. 농가가 최고 품질로 키워 낸 농산물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값을 받는 게 선진 농업으로 가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수 기자 seongsu.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