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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은 공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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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은 공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정서의 표현에서 새로운 가상공간의 창출로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게재 2020-01-07 14:15:32
2019-12-10-검은 강 숨은 숲ⓒACI BHT02
2019-12-10-검은 강 숨은 숲ⓒACI BHT02

현재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타임 큐비즘>전(2019.11.27 ~ 2020.2.16.),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검은 강, 숨은 숲 -6 Senses>전(2019.12.10 ~ 2020. 1. 27)이 진행 중에 있다. 이 두 전시를 통해 동시대미술이 공간 혹은 장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9세기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일이 미술의 최고 목표였다. 동시대미술에 와서는 공간의 문제는 오늘날 수많은 미술 주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날 미술은 공간 연출을 통해 완벽한 환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유도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지각 경험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서구에서 15세기 르네상스 이래 3차원 실제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사실적으로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은 순수 미술(fine art)의 제작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세계의 원리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가 인 것처럼 그 당시에는 세계를 정확하게 모방하는 것이 순수 미술의 목표였다. 정확히 언급하자면 사물이 아니라 사물이 놓여 있는 3차원의 실제 공간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지가 미술의 최고 과업이었다. 서구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이후 600년간 선원근법, 대기원근법 등의 기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서 실제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려고 했다.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중엽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역사를 '눈에 보이는 세계의 정복'(Conquest of Appearance)의 역사로 설명한다. 당시 순수 미술의 목표는 '진리의 은유'라고 할 수 있는 미를 내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고, 미는 완벽한 환영에서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환영 공간의 제시라는 미술의 목표가 폐기된 것은 사진기의 발명 때문이다. 사진이 실제 공간을 더 정확히 재현해내면서 미술은 그 목표를 버리고, 미술 나름의 새로운 목표를 찾기 시작한다. 이 역사가 바로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이다. 이때부터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은 눈에 보이는 바대로 그리는 방식에 벗어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변화된다. 한 공간을 여러 시점으로 보여주는 입체주의, 왜곡된 공간을 연출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초현실주의, 자연의 재현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순수한 미적인 공간만을 제시하는 신조형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 미술은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공간 연출이 작가의 정서 표현의 주요 장치이자 미술의 조형적 가치를 보장해 주는 핵심 요소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순수 미술의 독자적인 가치를 주장했던 예술 패러다임(fine art's paradigm)이 종말을 고한 오늘날에 이르면 미술은 공간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동시대미술에 와서 공간의 문제는 예술 패러다임 시대처럼 우선권을 가질 수 없지만, 정체성, 페미니즘, 몸, 시간 등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미술 독자적인 주제의 하나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 동시대미술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특정 공간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다. 전자의 경우, 작가는 특별한 역사적 혹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특정 공간을 작가 자신이 의도하는 방식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연출한다. 이를 통해 특정 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심리적 의미를 탐색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 세상을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작업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확장하거나 우리의 공간 지각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을 물리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경우와 디지털 매체를 통해 가상공간을 만드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리적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경우는 리처드 세라의 작업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휘어진 커다란 철판을 특정 공간 속에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은 그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가상공간의 경우는 컴퓨터로 만들어낸 디지털 공간을 말한다. 특정한 디지털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하고, 더 나아가 실재와 가상공간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검은 강, 숨은 숲 - 6 Senses> 전시는 전라남도 나주의 '숨은 숲'의 시공간 이미지를 10개의 거대한 스크린과 스피커 등을 이용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멀리 떨어진 특정 시공간 정보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하여 시청각 데이터로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실제 숲 공간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특정 시공간을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전시장에서 체험하게 함으로써 야외 공간에서는 자칫 놓칠 수 있는 감각 정보를 온전히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실제 공간에서는 놓치기 쉬운, 자연과 생명의 찰라 경험에 몰입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전시는 관객들에게 다층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가상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실제 공간에서 놓칠 수 있는 특정한 경험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 실제 공간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데이터를 모두 전송했다고 해도 가상 이미지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요소, 즉 실제와 가상의 차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타임 큐비즘> 전은 미술에서 디지털 매체의 발전이 우리의 지각과 인식 방식을 어떻게 확장시켰고, 동시대미술을 어떻게 변화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참여 작품들 중 공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정연두의 <자동차 극장>, 블루스프 그룹의 <편대(Echelon)>이 있다. <자동차 극장>은 관객이 전시장에 설치된 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실제로 드라이브하는 것처럼 촬영되고 이 장면을 스크린으로 바로 감상할 수 있는 설치영상작업이다. 관객은 자신이 영화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환영을 체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촬영 세트장에서 관객의 실제 움직임과 스크린에 투사되는 자신의 움직임의 불일치로 인해서 관객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교하게 구성된 디지털 장치 덕분에 관객은 시간과 공간 자체가 스스로에게 어떻게 경험이 되는 지를 느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편대>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들판을 줄지어 지나가는 군용 트럭, 설경 속을 내달리는 수송 열차 등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은 수송편대의 반복적인 움직임이 가상의 이미지임을 알고 있지만, 완벽한 세부 묘사와 공간감, 그리고 음향 효과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야기하고 있다. 이 가상공간은 서사가 분명하지 않은 채로 진행됨으로써 이 경험을 개념화시키지 못하고 그 경험 자체를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경험은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공간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주고 있다. 새로운 가상공간의 창출이 우리에게 공간 경험 자체를 새롭게 성찰하도록 만들고 있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2019-12-10-검은 강 숨은 숲ⓒACI BHT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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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프 그룹_편대 Echelon_3 channel video, 2min(중앙), 11min(양 측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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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_자동차 극장 Drive in Theater_installation video, variable siz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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