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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상실감
노병하 전남취재부 부장
  • 입력 : 2020. 02.10(월) 12:58
  • 노병하 기자

지난 며칠간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2020년 들어서 주변인이 하나둘 아프더니, 필자까지도 최근 몸이 안 좋아 병원을 방문했다. 이틀에 걸친 입원 검사 결과 수면의 질이 매우 떨어져 면역력이 악화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걸쳐 처방을 받고 났더니, 이번엔 아버지의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본디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지만, 기저 증상이 있었고 여러 번 미뤘던 터라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이래저래 모든 액땜이 다 지났나 싶었더니, 지난 주말 엄청난 일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6년여간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다. 누나였고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였으며 뛰어난 정치적 식견을 갖춘 인재였다. 필자와는 시각이 다소 좀 달라 서로 팽팽한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괜찮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토론 벗이었고 훌륭한 회의 진행자였다. 때로는 필자에게 원고를 요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경조사에 참석해 축하와 위로를 하기도 했다.

올해의 경우 그는 예년보다 더 많은 꿈과 노력, 희망을 2월 들어 필자에게 예고 했었고 담담한 성격인 나는 최대한의 덕담인 "꼭 다 이루도록 좋은 일이 이어지길 바래요"라고 건넸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근하신년과 건양다경이 쓰여진 예쁜 그림으로 화답해 왔다.

이틀 뒤, 그가 사망했다는 문자를 다른 사람을 통해 받았다.

그 문자를 받기 1시간 전 쯤 나는 그의 카톡에 "말씀하신 원고는 곧 마감이 가능합니다. 며칠 아팠네요"라고 투털거리는 문자를 보낸 터였다.

순간 멍해지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심장이 두근대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하는 중이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아니 누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갑작스런 죽음은 비현실을 넘어 판타지 같았다.

뒤이어 나에게 들어온 소식을 종합해보니 누나 사망의 직접 요인은 자동차 사고 였다.

10대들이 무면허로 아버지 차를 훔쳐 타고 가다가 서구 농성동 지하차도에서 역주행을 시도, 마주오던 차와 부딪혔고 그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바로 누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사고 당일 보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무심히 넘겼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건씩 마주하는 사고였을 뿐이니까.

그런데, 이것이 내 주변이 되고 현실이 되면서 상실감과 허무함 그리고 분노가 밀려왔다.

심지어 누나는 나에게 근하신년 문자를 보내고 3시간 만에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사람들과 섞이는 시간동안 나는 일상을 진행했지만, 그 외에는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와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같이 나눴던 논제를 되짚고, 그가 꾸었던 꿈에 현실감을 반영하기도 했다.

머리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그 시간동안 감히 나는 방문을 나설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를 찾아온 지독한 상실감은 결국 완연한 분노로 변질 됐다.

그것은 뜻밖에도 운전을 하던 중 튀어 나왔다. 수완지구를 가던 중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옆 차로에서 하얀색 차가 불쑥 들어왔고, 평생 차를 몰면서 크락션 한번을 안 눌렀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미친 듯이 크락션을 누르고 욕을 해대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필자 역시 가픈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하나 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흔히들 액션영화에서는 몇 명을 죽이느냐가 재미와 비례하기도 하기에, 죽음이란 우리에게 가까우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허나 하나의 생명은 정말 소중하고도 귀한 것이었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절감하지 못했던 이 사실을 나는 미친 듯이 크락션을 누르고 집에 돌아와 서재에 틀어박혀 어깨를 들썩이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연결된 존재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미워하며, 그래서 다독이는 나약하면서 그렇기에 강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존재의 축인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내 우주의 한토막이 사라지는 것이며 우리 울타리의 한 판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2020년 2월 울타리의 한 축이 사라진 지금, 나는 그가 보내준 근하신년을 들여다보며 지독한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내 생명에 대한 감사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정현(1965-2020) 작가의 평안과 안식을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