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담양 평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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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담양 평장마을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20. 06.11(목) 13:18
  •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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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비릿하면서도 진한 내음이다. 그윽한 치자향도 코끝을 간질인다. 도로변에는 노란 금계국과 하얀 데이지가 줄지어 피어있다. 노랗고 하얀 꽃너울 너머로 보이는 들녘은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내기가 빠르게 이뤄진 덕분이다. 초록의 들녘에서 눈에 띄는 게 누렇게 익은 보리다. 지난 봄 꽃을 피웠던 매실도 탱글탱글 살을 찌우며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낮의 햇볕이 뜨겁다.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다. 6월의 더위를 피해 산간 마을로 가는 중이다. '대나무의 고장'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의 평장마을이다.

평장마을은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숲그늘이 좋은 한재골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한재골은 병풍산(822m)과 불대산(720m)이 품은 계곡이다. 담양 대치(大峙·한재)와 장성 북하를 남북으로 잇는 물길이다. 코흘리개였던 어린 시절,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던 계곡이다. 여름엔 친구들과 함께 무더위를 식히러 찾았다. 겨울에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골짜기다.

그 시절 한재골은 나를 설레게 했다. 계곡이 깨끗하고 숲이 울창한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소풍을 가는 날, 도시락에는 삶은 달걀이 간식으로 들어있었다. 무덤자리 넓은 잔디밭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어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바다'였다고 했다. 그 표현을 빌려서, 나를 키운 건 숲이었다고 단언한다. 철 따라 소풍을 가고, 나무를 하러 다녔던 한재골은 지금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한재골 자락의 평장마을에 평장사(平章祠)가 있다. 불대산이 품고 있는 광산김씨의 태 자리다. 입구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든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같다. 세조가 충성을 기려 벼슬을 내렸다는 정이품송과도 닮았다. 사철 푸르고 곧다고, 우리 조상들이 예찬했던 나무다. 지금도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멋진 소나무를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마음이 밝아지고 발걸음은 경쾌해진다.

멋스러운 소나무를 키우고 있는 사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이뤄진 외삼문과 내삼문이 이른 아침임에도 활짝 열려 있다. 강학을 하고 모임공간으로도 쓰는 취사당(聚斯堂)이 있고, 제기를 보관하며 제수 음식을 준비하는 경모재(敬慕齋)가 배치돼 있다. 광산김씨의 세거지이고, 마을의 지명유래를 기록하고 있는 광산김씨유허비도 보인다. 사당의 규모와 기운에서 과연 '광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평장사 앞집 담장 아래에 감꽃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옛 추억을 득달같이 끄집어내 주는 풍경이다.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었다. 평소 마음에 둔 옆마을 미경이한테 주며, 가슴이 아슬아슬 흔들리던 기억이다. 떨어진 감꽃을 몇 개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내려다봤다.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온다.

평장리는 고려 때의 벼슬인 평장사(平章事)가 연달아 배출된 고장이라고 '평장동(平章洞)'으로 불렸다. 지금은 대아, 화암 두 마을로 이뤄져 있다. 대아마을은 대자암(大慈庵)과 아천(雅泉)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화암은 앞산 바위틈과 절벽에 진달래 등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꽃바위(花巖)', '꽃바우'로 불렸다. 인근의 전차포사격장으로 인해 수년 전까지 생활의 위협을 받기도 했던 마을이다. 지금은 전원마을로 인기를 얻고 있다.

평장사에서 시작되는 한재골 옛길도 잘 다듬어져 있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땔감을 하러 다니던 길이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와 인근 지역에 사는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목이다. 나무꾼의 길이고, 과거급제의 길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한재 정상에 주막과 약찜을 하는 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옛길에서 만나는 대아저수지 풍경이 아름답다. 한재벌의 농사를 책임지고 있는 저수지다. 물속에 불대산이 비쳐 반영된다. 저수지 주변에 음식점과 찻집이 줄을 지어 있다. 광주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이고 카페다. 수변을 따라 자동차도 쉼 없이 오간다.

한재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른 더위를 피해 찾아와 있다. 어린이들은 물장난을 하며 신이 났다. 정자에 누워서 잠을 자고있는 사람들의 볼을 산들바람이 스치며 지난다. 숲그늘 아래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도 천진해 보인다.

한재골 계곡도 넓고 깨끗하다. 깊지도 않아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게 쉴 수 있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 것도 한재골의 장점이다. 화장실도 군데군데 잘 갖춰져 있다. 계곡을 거슬러 걷는데, 어린 시절 소풍날이 언뜻언뜻 뇌리를 스친다. 깨복쟁이 친구들은 다들 잘 살고 있을까.

옛길도 다소곳하다. 넓지 않지만, 대숲도 만난다. 대숲에선 죽순이 쑥쑥- 자라고 있다. 댓잎의 끝자락이 아직껏 이슬을 머금고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징검다리도 정겹다. 길섶에서 산딸기가 빨간 미소를 짓고 있다. 붉은 유혹에 끌려 금세 몇 개를 따먹었다. 혀끝이 달큼하다. 숲에는 때죽나무와 산딸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하얀 꽃들이 계곡물을 따라 세상 구경에 나섰다. 숲길에서 듣는 계곡 물소리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찾은 발걸음이 아직은 많지 않아 숲길도 호젓하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기에 좋다.

길에서 왼쪽으로 불대산 백운봉, 오른편에 병풍산 투구봉이 자리하고 있다. 두 봉우리가 한재골의 동서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옛날 한재골에는 사대통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명에 군사용어도 유별나게 많이 들어있다. 항복을 받는다는 수항골, 군대를 통솔했다는 통싯골, 장군의 투구를 닮은 투구봉이 있다. 칼을 잡은 장군의 손등을 닮았다는 칼등, 군사들이 진을 쳤다는 막군치도 있다.

한재골이 험준했다는 얘기다. 60년대에는 계곡의 주민을 이주시키는 소개령이 내려졌다. 간첩의 은거지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주민들이 골짜기를 떠났다. 시나브로 옛길이 사라지고 숲으로 변했다. 70년대 들어 한재골을 넘어가는 작전도로가 새로 뚫렸다. 지금은 광주와 장성 백양사를 이어주는 가장 짧은 포장도로가 됐다.

옛길의 끄트머리, 하늘마루정원에서 만나는 마가렛꽃도 어여쁘다. 지천이 마가렛꽃이다. 정원으로 오가는 길목도 마가렛으로 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한재골의 계곡 물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산새들의 지저귐도 귓전에서 속삭인다. 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재벌도 드넓다.

하늘마루정원은 홍차 전문점이다. 격이 다른 분위기에서 20여 가지의 홍차를 맛볼 수 있다. 멋진 곳을 만나면 다시 찾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만간 또 찾고 싶은 집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대야저수지의 반영-수변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3)" "대야저수지의 반영-수변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대야저수지의 반영-수변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3)" "대야저수지의 반영-수변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대야저수지의 반영-평장마을을 품은 불대산이 저수지 물에 반영돼 비치고 있다

때죽나무꽃-옛길에서 만난 때죽나무꽃과 떨어져 계곡물에 떠있는 때죽나무꽃 무더기

때죽나무꽃-옛길에서 만난 때죽나무꽃과 떨어져 계곡물에 떠있는 때죽나무꽃 무더기

떨어진 감꽃-어렸을 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던 추억을 떠올려준다 .

떨어진 감꽃-어렸을 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던 추억을 떠올려준다 .

떨어진 감꽃-어렸을 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던 추억을 떠올려준다 .

떨어진 감꽃-어렸을 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던 추억을 떠올려준다 .

산딸기의 유혹-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군침돌게 한다.

산딸기의 유혹-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군침돌게 한다.

아침이슬-옛길의 대숲에서 만난 댓잎과 죽순 껍질에 이슬이 맺혀 있다 .

아침이슬-옛길의 대숲에서 만난 댓잎과 죽순 껍질에 이슬이 맺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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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장사 전경-불대산이 품고 있는 사당으로, 광산김씨의 태 자리다.

평장사의 소나무-나무의 품새가 남다르다. 정이품송이라도 닮은 것 같다.

평장사의 소나무-나무의 품새가 남다르다. 정이품송이라도 닮은 것 같다.

평장사의 소나무-나무의 품새가 남다르다. 정이품송이라도 닮은 것 같다.

하늘마루정원-정원으로 오가는 길목에서부터 정원마당까지 하얀 마가렛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하늘마루정원-정원으로 오가는 길목에서부터 정원마당까지 하얀 마가렛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하늘마루정원-정원으로 오가는 길목에서부터 정원마당까지 하얀 마가렛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하늘마루정원-정원으로 오가는 길목에서부터 정원마당까지 하얀 마가렛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한재골계곡-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재골계곡-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재골계곡-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재골계곡-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재골계곡-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숲길이 호젓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싸목싸목 걷기에 좋다 .

한재골옛길-한재골을 찾은 여행객이 정자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다

한재골옛길-한재골을 찾은 여행객이 정자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