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에 담긴 역사에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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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지층에 담긴 역사에 미래를 묻다
이매리 작가, 역사현장 담은 사진통해 과거 소환||갑작스런 뉴노멀 시대에 대한 사색기회 제공||17일부터 광주신세계갤러리서 개인전||회화, 설치, 영상 작품 등 30여점 전시
  • 입력 : 2020. 09.16(수) 16:07
  • 박상지 기자

이매리 작 '지층의 시간'

이매리 작가는 지층처럼 쌓여진 삶의 역사를 한 층, 한 층 파헤치며 탐색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잊혀졌던 과거의 흔적을 지상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이 그의 주된 작업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층을 이루고 있는 지층처럼, 어딘가에 쌓여있는 인류의 흔적이 담겨있다.

공동체의 기억, 정체성, 역사 문제는 이 작가 작품의 주된 단골소재이다. 과거 그는 이러한 소재를 '하이힐'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풀어내왔다. 실물보다 수백배 확대 된 빨간색 하이힐 조각을 통해 이 작가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하이힐 이미지에서 찾아낸 개인의 발자취와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공동체의 발자취와 정체성으로 점차 발전해갔다.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은 이 작가의 작품이 17일부터 10월6일까지 광주신세계갤러리에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2015년부터 회화, 영상, 설치 등 30여점을 통해 작가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온 '시 배달', '지층의 시간', '캔토스의 공간' 등의 연작을 선보인다.

5년 전 이 작가는 그의 부모님의 고향인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 터의 발굴 작업에서 가져온 돌과 흙, 그리고 그 발굴 작업의 재현 퍼포먼스를 통해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살다 사라져간 사람들의 '기억들의 지층'을 발굴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위에 경전(經典)이나 시(時)의 내용을 금분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 간다. 그 과정을 통해 잊혀진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작품에 담아 관람자로 하여금 그 앞에 발길을 잠시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제공한다.

작품 속에 인용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한 서사시의 일부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And(그리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 즉 반복되는 역사의 지층을 나타낸다. 이처럼 시는 역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존재의 흔적을 탐구하는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시 배달' 연작의 영상작품에서는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 민족의 시를 낭송한다. 비록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이지만 각국의 시 안에 스며있는 삶과 숨결이 또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되어 각 나라의 민족과 한 국가의 생성과 소멸,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광주신세계갤러리 관계자는 "우리의 삶과 역사의 지층에 담겨진 과거의 모습을 다시 드러내 용기 있게 마주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바로 지금, 아주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졌다.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 거라 공감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매리 작 '절대적 공간'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