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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구종천>몰입
구종천 광주광역시 일자리정책관
  • 입력 : 2020. 09.23(수) 16:38
  • 편집에디터
구종천 광주광역시 일자리정책관
지난 밤, A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무거운 몸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눈은 휑하니 충혈 되었고 다크 써클은 그동안 얼마나 고통과 번민 속에 지냈는지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다만 꽉 다문 입술과 초롱한 눈망울은 어느 때 보다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하여 아내는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A는 공직 10년차인 7급 공무원이다.

하루 전. 아침에 국장실 회의를 다녀온 B과장이 다급하게 팀장과 팀차석 회의를 긴급 소집한다. 필시 국장으로부터 청장님의 긴급 기획안을 지시받아 온 듯하다. 이젠 척 보면 안다. 국장실에 다녀와 헐레벌떡 팀장과 팀차석 회의를 소집해 놓고선 고민스런 표정으로 혼자 담배를 피우러 가는 B과장의 행동패턴에 대한 학습효과다.

과장 주재 회의. 잠시 적막이 흐르다 과장이 말문을 연다. "청장님께서 기획안을 내일까지 보고해 달라고 국장님께 지시하신 모양인데 우리 과 소관이 아닌 것 같다고 옆 과장과 실랑이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왔네."고 운을 덴 뒤, "A주임! 내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자네가 이 일을 맡아 주소. 자네가 능력도 있고 우리 과의 차석아닌가, 곧 6급 승진도 해야 하니까 이번 일을 통해 국장님께 어필 한번 해보세." A주임은 대답도 못했지만, 그 순간 회의 참석자 모두의 얼굴엔 안도와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다.

떠밀리다시피 일을 맡아 사무실로 돌아 온 그는 앞이 캄캄해 진다. 이 일을 어디부터 시작해 내일까지 보고서를 만든단 말인가, 이내 점심시간이 찾아왔지만 먹는둥 마는둥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동료들에게 내색도 못하고 오후 내내 인터넷 검색창에 매달렸다. 네이버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

몇 군데 지자체엔 유사사례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도 돌려 본다. 아무런 해법도 구하지 못한 채 퇴근했지만 생각은 온통 그 일 뿐이다. 아내가 알아채곤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별일 아니니 먼저 자라고 안심은 시켜놨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도 없다.

수없이 많은 고민과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다 새벽 다섯시쯤 문득 잠에서 깬다. 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A주임의 두뇌가 갑자기 맑아지며 보고서에 대한 방향과 해법이 떠오른 것이다. 바로 몰입의 효과다.

온 종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일만을 생각했고 엄청난 검색과 문헌을 통해 공부했으며,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집중하고 몰입한 결과인 것이다.

몰입은 어떤 일에 깊이 빠져 있을 때 느끼는 의식상태를 의미한다. 몰입도가 높은 조직구성원은 열정적 근무 태도와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특징을 나타내며 매일의 작업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 놀랄만한 업무성과를 보이게 된다. 몰입된 개인은 조직의 귀중한 자산이 되며 조직을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A주임과 같은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도둑이 현장에서 경찰에게 들켜 도망갈 때 그 스피드는 가히 세계 선수권급이 된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한가지 일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놀라운 능력이 나온다고 한다.

필자는 인생 60을 바라보는 나이다. 평생직장으로 여겨왔던 공직생활을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A주임과 같은 몰입 경험을 권해보고 싶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깨우고 올바른 공직자 상을 정립하는데도 도움이 크리라 믿는다.

작금의 코로나19 창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시는 코로나의 지역 확산을 차단하는 방역에 혼신을 다하면서, 이와 양립키 어려운 경제를 지키고 시민생활을 안정화시키는 일에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시와 공직자들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이 이른 시일 안에 보건방역과 경제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몰입의 효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