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꿩밥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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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꿩밥 난초
  • 입력 : 2021. 04.01(목) 11:01
  • 편집에디터

진도군 지산면 망뫼산 꿩밥난초, 2021년 봄 이윤선촬영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저 유명한 이병기의 시 난초 4연이다. 작은 티끌이나 먼지도 가까이 않는 고매함이란 어떤 것일까? 바람과 구름만을 벗하여 비와 이슬 받아먹고 사는 청빈함이란 어떤 것일까? 누가 알아주는 이 없어도, 공명을 앞세워 찾는 이 없어도 저 홀로 피어 청초하니 그 자태를 누가 흉내 낼 수 있겠는가. 대체로 고금의 식자들이 난초에 투사한 마음들이 그러하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고 있지만 초야에 묻혀 청정하게 살고 싶다는 로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병기는 앞서 3연을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동병상련이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청빈한 난초가 위로하여 준다. 은군자(隱君子) 곧 세파를 멀리하여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세월 낚는 군자들에 비유된다. 재능은 있으나 부귀와 공명을 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들이다. 예로부터 난초는 청초함과 고고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은둔에 비유되는 꽃들 중 최고는 난초다.

꿩밥과 향초(香草)

지난 주 오랜만에 고향마을 뒤까끔(뒷산)에 올랐더니 진달래며 난초가 만개하였더라. 우리 고향에서는 춘란을 꿩밥이라 한다. 지역에 따라 토끼풀, 아가다래, 여달래, 쌀밥 등 여러 가지 부르는 이름이 있다. 보춘화(報春化)는 봄을 알린다는 뜻이고 춘란은 봄의 난초라는 뜻이다. 민춘란은 난초의 종류가 셀 수도 없이 많으니 그 중 바탕이 되는 꽃이란 의미로 읽어도 무방하다. 열대지방이 원산지인 난초는 450속 1만 5,0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난초, 보춘화, 개불알꽃, 석곡, 풍란, 전마 등 60여종이 있다. 이중 목란, 풍란 등 난(蘭)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꽃들만 수십 종이다. <설문해자>에서는 향초(香草)라 했다. <본초경>에는 수향, 연미향, 향수란이라 했다. 국향, 향조, 제일향, 왕자향 등 모두 난초를 부르는 이름들이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것이 난(蘭)이요, 한 줄기에 예닐곱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적은 것이 혜(蕙)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향 많고 고절한 난초를 꿩밥이라고 하고, 향 적고 한 줄기에 꽃 여럿 달린 것을 중국난초라 했다. 난초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공식 기록은 삼국유사 <가락국기>다.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허황옥이 만나는 장면이다. 허황옥 일행을 별포 나루에 머물게 하고 난초로 만든 음식과 혜초로 만든 술을 주고 무늬와 채색이 있는 자리에서 자게 하였으며 옷과 비단과 보화를 주었다. <본초경>에는 난초를 달여 먹으면 해독이 되고 몸이 가벼워져 노화현상이 없어진다 하였다. 이 생각은 나쁜 것을 물리친다는 벽사(辟邪) 관념으로 이어졌다. 난초를 길러 상서롭지 못한 일을 막아낸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난초를 이르는 꿩밥이라는 이름도 꿩이나 닭이 이들 풀을 잘 먹어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래서 장끼(수컷)나 까투리(암컷)들이 그리 아름다울까.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에 올라 무등산을 보고 나주 금성산 당도하니 까투리 한 마리 푸드등 매방울이 떨렁~" 까투리타령에서 사냥매가 방울을 떨렁대며 낙하하는 순간 장끼는 어쩌면 난초를 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선비들이 사군자의 하나로 난초를 넣고 늘 곁에 두고 감상하려 했던 것에 비해, 민간에서는 음식이나 약초로 활용하고 노래로 불렀던 것 같다. 고산절벽 고고하게 핀 풍란뿐만 아니라 남도산하 도처에 만개한 꿩밥, 발에 밟히도록 지천인 보춘화의 메시지가 어찌 군자와 나 같은 땔나무꾼을 가리겠는가. 굳이 엘리엇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가장 잔인한 기억들마저 재생하는 봄의 전령사인 것을.

지란지교(芝蘭之交),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화공을 불러라 화공을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천하명산 승지강산 경개(景槪) 보던 눈 그리고 봉래방장 운무 중에 내(냄새)잘 맡던 코 그리고 난초지초 왼갖 향초 꽃 따먹든 입 그리고 두견 앵무 지지 울제 소리 듣던 귀 그리고~"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화상을 그리는 장면이다. 용궁에서 바다 속만 보고 살았던 별주부에게 그려주는 토끼의 형상은 마치 만물 소생의 춘경을 읊어놓은 듯하다. 난초 지초 온갖 향초들이 등장하는 까닭일 것이다. 지초가 난초에 격조를 맞추는 소재로 채택되었다. <공자가어>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지초(芝草)와 난초(蘭草)는 숲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착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지초나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오랫동안 그 향기를 잊지 못한다." 지초가 진도홍주에 사용되어 저녁노을빛 혹은 새벽의 북새(노을의 남도 방언) 닮은 빛깔을 연출해내는 줄만 알았더니 그 향이 난초를 배가하는 모양이라. 여기서 친구와 의형제를 맺을 때 사용하던 금란보(金蘭譜) 혹은 금란부(金蘭簿)가 나왔다. "비록 대해의 물이 마를지라도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맹세다. 오죽하면 <역경>에서도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이로움은 금속도 끊어버린다. 마음이 같은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라고 했겠는가. 우정을 빗대 고금의 동양사회를 횡단해 온 난우, 난형, 난객, 난교, 난계, 난언, 금란, 금란호, 금란지교 등이 모두 난초 향에 투사한 고절한 마음들이다. 그래서 난초를 깊은 골짜기 속의 군자라는 뜻으로 유곡군자(幽谷君子)라 한다. 이것이 어찌 고담준론하는 선비들에게만 국한되겠는가. 지란지교의 향은 고고한 데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냄새에 닿고 저자거리의 땀 냄새에 가 닿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까끔의 장솔들 사이를 향으로 채우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외롭지 않으며 고관대작의 명예 없어도 스스로 족하다. 난초와 지초의 행간에 서린, 아! 무엇보다 만리길 나서며 처자를 내맡길 수 있는 벗에게 가 닿는다. 일필휘지로 친 사군자 난초의 여백에 내려앉은 꿩밥, 이름도 빛도 없는 땔나무꾼들의 향을 묵상하는 이유다. 지난 가을 지상에 내려앉았던 낙엽을 뚫고 청초하게 올라온 춘란을 보며 나는 함석헌의 시를 떠올린다. 그윽한 향을 교신할 수 있는, 그래서 가난도 명예 없음도 하잘 것 없는,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남도인문학팁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의 시)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국립세종수목원 난초과식물전시온실에 봄을 알리는 보춘화가 개화해 관램객을 맞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