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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봉사 인생… 갈 곳 잃은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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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봉사 인생… 갈 곳 잃은 수녀님들

사회복지법인으로 정년 후 거주 불가

게재 2021-04-18 17:19:42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전경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전경

소화자매원에서 50여 년이 넘게 봉사해온 수녀들이 정년으로 사회복지 현장을 떠나게 됐지만, 수도자로서 수도 생활에 정진할 수녀원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8일 소화자매원에 따르면, 예수의 소화수녀회 수녀는 총 18명이며 현재 절반 이상이 70대를 넘겨 더는 복지 현장에 종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소화자매원이 사회복지법인이 되며 이들이 정년 퇴임 후 머물 수 없게 됐다.

소화자매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주도로 설립됐다. 현재는 정신·발달 장애인 250여명을 돌보고 있다.

소화자매원의 수녀들은 5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봉사하며 광주지역의 결핵 환자 등을 위해 힘써왔다.

1956년 '무등원'이 시초가 돼 봉사 생활을 하고자 하는 젊은 수녀들이 모여 소화자매원이 탄생했다.

1978년 봉사자들은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음악회를 개최하고자 했다. 음악회 표를 팔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조비오 신부를 만났다.

이후 조비오 신부는 사비를 털어 광주 남구 봉선동에 중증 장애인 등을 위한 거주 공간을 짓도록 지원했고, 성당에 후원회를 만들어 신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소화자매원은 1984년까지 미인가 시설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생활비 외에는 지원받지 못했다. 당시 가난했던 80여 명의 장애 가족들은 돼지 움막을 개조한 열악한 거주 공간에서 살아야 했다.

1985년 3월, 사회복지 법인을 설립했지만, 이로 인해 수녀들은 소화자매원을 떠나야만 하는 위기에 놓였다.

당시 봉사했던 20대 수녀들은 이제 70~80대의 노인이 됐고,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도 생활을 위한 독립 수녀원도 없을뿐더러 소화자매원 내에 거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비오 신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수녀원 건립을 준비하는 과정 중 별세했다. 그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가 이를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수녀원 건축을 계획, 지난해에는 광주대교구 내 성당에서의 모금 활동까지 허가받았지만, 코로나19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됐다.

조영대 신부는 "6·25 이후 가난하고 열악했던 시절, 사회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자원봉사에 뛰어들었던 이들이 60여 년을 지내고 이제 돌봄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 수녀들이 됐다"며 "청춘을 바쳐 긴 세월 희생과 사랑을 바쳐 온 수녀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수녀님들을 위해, 앞으로의 삶을 수도자로서 기도와 수도 생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수녀원을 지어드리고자 한다"며 "새 수녀원 건립에 많은 분이 힘을 모아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