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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삶은 무지개일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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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삶은 무지개일래라

유순남 수필가

게재 2021-05-13 14:18:14
유순남 수필가
유순남 수필가

지난 4월 27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선종했다. 정 추기경은 지난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한국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다. 그는 '교회법 전문가'로 쉰 권이 넘는 역서와 저서를 남겼다. 아쉽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만은 종교지도자들의 죽음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들이 가정을 갖지 않고 오직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평생을 바쳤기 때문이리라.

몇 달 전 영화 <부활>이 재개봉되었다. 그 영화는 안타까운 삶을 살다 간 '남수단의 슈바이처' 이 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고발 피디로 유명한 구 수환 피디가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난 이 태영 신부(이 태석 신부의 형)의 유언에 따라 본인의 은퇴자금을 털어 만들었다고 한다. 구 피디는 고 이 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감독이다. 잘못된 것을 고발하는 것은 정의롭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로움은 세상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기에 생기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고발 영화입니다. 가장 강력한 고발은 사랑입니다. 이 영화도 사랑을 통해서 부당한 권력을 고발하고, 이기주의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태석 신부는 성직자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분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구 피디의 말이다. 그는 북유럽 정치인들의 삶이 이 신부의 삶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북유럽의 정치인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보좌관 없이 일하고, 주민들의 정보공개 요구에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정치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의 빈곤국 남수단에서 학교를 짓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 대장암으로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부활>은 십 년 전 이신부가 세상을 떠나간 후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제자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삶의 조건이 열악한 남수단의 작은 톤즈마을에 이 신부가 지은 학교에서 배운 제자 중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거나 현재 의대를 다니고 있는 수가 무려 쉰일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의사가 된 이 신부의 제자들은 환자를 만나면 이 신부가 그랬듯 먼저 환자의 손부터 잡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한 뒤 진료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들은 그들에게 마치 이 신부가 부활해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낀다. 어떤 사람의 삶을 흠모한 나머지 그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 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그의 삶을 따르고, 형편상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의 삶을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다니 그의 삶은 결코 성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산에는 크고 멋진 소나무도 있지만 물푸레나무와 생강나무, 쥐똥나무, 청가시덩굴도 있고, 노란 양지꽃, 보랏빛 제비꽃 같은 아주 작은 풀꽃들이 어우러져야 산이 된다. 그렇듯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다면 훌륭한 사람의 삶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국가나 사회에 자기의 도리를 다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또한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사는 무지개가 섰다가 사라지듯이 아름다운 공허였었다.' 이것은 시인 한하운의 삶에 대한 해석이다. 그는 스스로 천형이라 말하는 문둥병을 안고 굴욕과 수모를 견디며 힘겨운 삶을 살다 쉰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문둥병을 앓으면서도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떠난 한하운, 한하운보다 더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을 불태워 사람을 사랑하다 간 이 태석 신부, 종교에 헌신한 정진석 추기경, 어두운 곳을 밝히는 구 수환 피디, 국민의 혈세를 아끼는 검소한 북유럽 정치인, 그리고 이름 없이 최선을 다해 살다간 보통사람들의 삶. 지구 밖에서 보면 이 모든 삶이 여러 가지 색깔의 무지개가 되어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