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 참사…외양간은 제대로 고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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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광주 붕괴 참사…외양간은 제대로 고치고 있나
사업자·감리·공무원 안전 무신경||후진국형 사고로 국제안전도시 명성 흠집||선제 조치 건축물해체 지침 전시성 비판||건축사-기술사 밥그릇싸움 개입 논란만||탁상 행정이 아닌 현장 목소리 반영을
  • 입력 : 2021. 07.11(일) 16:28
  • 이용규 기자
광주 학동 붕괴 참사는 위험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26년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육중한 삼풍백화점 건물이 연기를 피워 오르며 폭삭 주저앉은 것처럼, 지난 달 9일 실제 상황은 형언키 어려운 황당함 그 자체였다. 유사한 재난과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비슷한 유형의 안전 무신경이 빚어낸 후진국형 건물 붕괴가 국제안전도시 광주의 간판도 무너져버렸다.

5층 건물 붕괴 사고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4지구 재개발은 아파트를 포함한 노후 주택 총 610동을 허물어 고층아파트를 짓는 민간 주택 정비사업이다. 재개발 주택조합이 건축주격인 시행자이나, 개인 건축물이라도 공공재 특성을 갖고 있어 허가 감독권을 갖고 있는 행정의 역할이 크다.

학동 4구역 재개발조합의 부풀어진 철거공사비는 불법 하도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85%가 싹둑 싹둑 잘려나갔다. 업자들은 속도전으로 수익을 챙겨야 하기에 비용이 들어가는 안전장치 구축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내의 굴지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에 1급 발암 물질 석면이 나뒹글어도 업자·공무원·감리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았다. 개인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가 총체적 위험과 공포감으로 내몰렸다. "설마 나에게 사고가 생기겠는가"라는 안이함이 참사의 씨앗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불법 하도급이 판을 쳤고, 정치인,공무원·조폭·재건축조합의 거미줄같은 공생 관계들이 드러나고 있다.

학동 철거 참사에는 건축주·사업자·감리·공무원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이해 관계가 달라 상충한다. 건축주와 업자는 이익, 공무원은 공권력, 감리는 건축주와 허가권자의 중간에서 공무적 역할을 하는 전문 사업자이다.

감리는 당초 공사 기간 131일 동안 상주 감리를 희망하고, 재개발조합측에 1억3900만원의 철거 감리비 견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조합측은 '5000만원 이상은 수의계약 불가 조항'을 내세워 비상주 조건으로 4950만원에 계약했다. 허가권자는 법적 책임이 따르는 감리를 지정했놓고도 감리비는 건축주와 민간계약 관계로 선을 그었다.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잡음 등을 우려해 구체적 경비 내역을 인정도 안해주고, 너희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격이었다.현장 관리에 소홀한 감리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철거 감리 용역비가 적든 많든 현장 감독을 책임진 이상 해체계획서 대로 작업 여부를 점검하는 업무에 충실해야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우문을 던져본다. 혹여 상주감리가 받아들여지고, 국민권익위원회을 비롯한 구청 홈페이지에 제보된 학동 재건축 현장의 안전 민원과 관련해 공무원들의 점검이 한번이라도 있었더라면 말이다.

사고 수습 대책은 예방 만큼이나 중요한 현안이다. 존재감이 없었던 허가권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재발 방지 대책으로 개선안이 고개를 내민다. 제도 개선에는 다양한 이익집단이 존재해 조율과 설득이 선행돼야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는 행보는 무리가 따른다.

지난 1일 시행에 들어간 광주 건축물 해체 공사 지침이 그렇다. 시는 상주 감리의무화와 안전 강화를 골자로 발의된 건축법 개정안에 맞춘 후속 지침을 내놓았다. 사고 발생 20일만에 내놓은 광주시 지침은 국민의힘 김은혜의원이 발의한 건축물 해체 계획서 검토 권한을 안전기술사에만 주는 것에 맞춘 선제 조치로 포장됐다. 업무 태만과 전문성과는 전혀 다름에도, 제도 개선의 명분으로 눈 밖에 난 건축사는 사고 집단으로 좌표를 찍혀 내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1년전 서울 잠원동 사고 이후 제정된 건축물관리법 의해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던 상주감리제에 뒷짐지고 있던 광주시로선 의외의 조치였다.

개정안이 통과되기전 까지 한시 적용될 이 지침은 입법과정에서 건축사 영역이 포함될 경우 혼선이 불가피하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제시해야하는 절박감에 그렇다치더라도, 국민 분노에 편승해 번갯불에 콩볶듯 일단 감리를 희생의 제단에 올려 비판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그러니 발의된 법안이 규제나 실효성 여부를 따져 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시간 낭비로 여겼고, 공권력의 일방적 지시만 있었다.

우월적 힘을 갖고 있는 광주시가 건축사와 기술사간의 밥그릇싸움에 끼어든 것은 이해가 안된다. 해체 공사의 안전 확보는 양보할 수 없는 최대 현안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돼가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시공, 유지 운영, 해체 과정까지 건축물의 생애 전반에 걸쳐 건축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최상의 안전책이 수립돼야 한다.

더욱이 광주·전남 등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대지는 부족한 상태다. 이의 해결책으로 건축물 해체시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과거 알음알음 음성적 해체 방식에서 앞으론 건축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도록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지금까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지자체가 건축물 해체 시스템 구축에 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학동 참사도 건축물 해체 시스템 부재에 의해 피해가 커진 면도 있다. 이는 광주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지자체가 챙겨야할 숙제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더 튼튼하게 고쳐야 한다. 그래야 다른 모든 소를 잃어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우선적으로 광주 동구 동명동을 비롯해 광주 지역의 40~60년된 저층 단독 노후주택에 대한 안전 점검단을 구성, 수시 현장 점검을 통해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국제안전도시 광주의 필요 충분조건은 우리 주변에서 시시각각 덤벼드는 위험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정답은 탁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