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시켜달라는 야당, 안된다는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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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사퇴시켜달라는 야당, 안된다는 여당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1. 09.07(화) 14:18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국회의원직을 버려야겠다는 야당의 한 초선의원, 소속 의원을 사퇴시켜달라는 야당, 사퇴는 안된다며 수사부터 받으라는 여당.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다. 부친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사퇴 이야기'다.

사퇴는 일을 그만두고 물러나는 행위다. 주로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기관의 장이나 고위공직자에게 해당된다. 조직 내부에서 책임질 일이 발생했거나 자신의 과오가 클 때 선택하는 마지막 카드다. 국회의원의 경우 의원직 사퇴는 흔치 않은 일이다. 책임지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사퇴카드'를 꺼낼 때는 의도된 정치적 행위가 있다. 대선이나 단체장 선거 출마, 청와대 등 다른 공직으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2017년 국민의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면서 의원직을 내려놨다. 공직선거법 53조는 국회의원이 대선에 나오더라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쳤다. 제14회 대선을 앞둔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도, 18대 대선을 앞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도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대권으로 향했다. 정치적 배경과 셈법이 깔린 선택이다.

윤희숙 의원의 사퇴 선언은 이와 결이 다르다. '자기 정치'에 가깝다. '책임정치'와도 배치된다. 윤 의원은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국회 연설을 통해 잘 알려진 인물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해 단숨에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초선 의원으로 '이재명 저격수'를 자처하며, 당 대선후보 경선까지 뛰어들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5일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부친의 세종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게 사퇴의 변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개운하지 않다. 시작은 이렇다. 윤 의원 부친은 세종시 전의면 부동산 관련, 농지법·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윤 의원은 처음엔 아버지가 농사 지으려고 산 땅이라고 해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투기 목적임이 인정됐다. 윤 의원은 사과 대신 '변명하지 않겠다'며 공수처 수사를 요구했다. 당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었다. 공수처 수사대상이 아니다. 부친 수사와 선 긋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하면 될 일인데, 사퇴를 꺼내면서 법적 문제가 정치 이슈로 변질됐다.

이런 식의 '돌발 사퇴'는 정치를 희화화 할수 있다. 본인은 연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명하고 수사부터 받는게 절차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도 맞지않는 행위다. 선출직 공직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에게 무한 책임을 진다. 서울 서초구 갑 유권자에게 의견을 물어봤는가. 국회의원직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다. 손바닥 뒤집듯 감정에 따라 버리는 직이 아니다.

국회 표결로 가더라도, 윤 의원이 사직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은 사직안을 처리해주지 않을 것이다. '내 코가 석자'여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먼저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를 받았다. 의원 12명이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았다. 당 지도부는 이들에게 탈당조치를 내렸지만, 용두사미가 됐다.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길(출당)을 터준 비례대표 2명을 제외하고, 제 발로 당을 떠난 의원은 없다. 그 사이 우상호·윤재갑 의원은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 권고가 철회됐다. 결국 정치적 선언에 불과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윤 의원의 사직안을 가결한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게 뻔하다.

여당에 공을 넘긴 국민의힘 역시 당내 상황은 '오십보백보'다. 윤 의원이 사퇴하면, 권익위의 명단에 오른 나머지 11명에 대한 거취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비판해 왔는데, 이들을 더 강하게 징계하지 않을수 없다. 잘못하다가는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될수 있다. 여야 모두 윤 의원 사직안 표결을 놓고 '폭탄 돌리는' 양상이다.

부친의 문제로 제출한 사퇴안이 처리된 전례는 없다. 그래서 의결되지도 않을 사직안을 가지고 정치적 거래를 한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논점을 흐리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다. 여야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국회의원직 사퇴이고, 지키지도 않을 탈당 조치인가. '윤희숙 사퇴이야기'는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우리 국회의 정치 수준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