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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남도만(南道灣) 물골따라 명멸한 수많은 도시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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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남도만(南道灣) 물골따라 명멸한 수많은 도시와 문명

남도만(南道灣)
두 번의 천년이 지난 지 스무 해 넘어
남도땅 어느 한적한 끝자락에
매향비 하나 세워두는 일
이것이야말로 이 변혁의 땅 갱번에서
대를 이어가실 존재들을
영접하는 일이지 않겠는가

게재 2022-01-20 16:24:30
거꾸로 세계지도. 해양수산부 제공
거꾸로 세계지도. 해양수산부 제공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백두대간은 학문 각 분야의 관심과 연구를 통섭적으로 아우르는 '백두대간학'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최원석, 산의 인문학,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으로). 이는 지난 30년 동안 인문, 사회, 자연과학 각 분야에서 백두대간 관련 논문과 보고서, 단행본 등이 무려 1,500여 편이나 나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통일시대에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지리교과서 및 백두대간 지명사전, 백두대간 지도 편찬, '백두대간학'으로의 발전 등, 이같은 과제야말로 남북한 백두대간을 아우르는 국민적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것이며, 당장 실현 가능한 남북 교류를 위한 기본 작업으로서 백두대간의 현대적 의미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김우선, '산경표' 톺아읽기, 지명의 역사지리적 함의와 백두대간, 민속원, 2021).

산경표(山經表)에서 해경표(海經表)로

김우선의 논저를 인용해봤다. 그간의 산맥 중심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수작이다. 앞서 1,500편이 넘는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우리 국토를 산맥 중심으로 정리하고 재구성한 편력이 방대하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중심이랄까, 모토에 신경준(1712~1781)의 <산수고(山水攷)>와 <강계고(疆界考)>가 있다. 1800년경 이를 후대인들이 정리한 것이 '산경표'임은 몇 차례 본 지면을 통해서 소개했다. 풍수지리적 관점의 국토 이해야 고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관점이지만, 백두대간과 열두 정간으로 한반도를 구획하거나 여러 이름을 붙여 재구성했던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성과이기도 하다. 근자에는 남한, 북한 정부가 각기 개입하여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우선이 말한 '백두대간학'이 이를 말해준다. 물론 여기서도 우리 국토를 백두산으로 제한시키는 일에 반발, 예컨대 만주땅에 터를 내렸던 우리 민족의 터를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제한시키는 문제들이 지적되기도 했다. 나는 <산경표>를 전거 삼아 <해경표>라는 이론을 만들고, 몇 차례에 걸쳐 한해륙(반도가 아닌 해륙이라는 국토사관은 윤명철 교수의 이론을 수용)을 5대 물골론으로 주장 해왔다. 그 시작에 크로시오해류(黑潮)가 있다. 흑조가 태평양을 휘돌아가며 흩뿌린 지류의 끝자락 흑산도(黑山島, 흑조의 디딤돌)를 기점 삼아 중물골(midle bay), 소물골(small bay)로 다시 나누었다. 흑산에서 성큼 한 발을 건넌 물목을 무안만이라고 이름 지어 두었다. 물안 혹은 물아래라는 함의를 가진 지명이 주는 아우라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의한 이유를 이렇게 밝혀두었다. "갯벌의 철학적 인유(引喩)이자 해정학(海政學)적 포지셔닝이다. 남도인들의 인식 범주, 바다를 강으로 생각하고 강을 바다로 생각하는 대대적(對待的) 사고의 형상화다. 출처는 강변(江邊, riverside)이되 조하대의 보이지 않은 물길까지 포괄하는 '갱번'이다. 강항(江港)이나 해항(海港)보다 강포(江浦)라는 용어를 채용하는 것은 개(갱번)의 어귀라는 생태적 입지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갱번론'이다. 남도 사람들이 왜 바다를 강으로 인식하는지, 또한 강을 바다로 인식하는지에 대한 생래적 관념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다시 갱번에 서서

이제 남도만을 말할 때가 되었다. 한해륙 5대물골론 중에서 무안만(물안, 물아래)으로 설정해두었던 이름을 '남도만'으로 고쳐 정리한다. 왜 남도만인가? 남도가 무수한 만(灣)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의 물골은 백두대간 및 열두 정간의 산골과 대칭이다. 대칭은 반대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개를 포개었을 때 그 상하, 좌우가 서로 똑같은 것을 대칭이라 한다. 주역에서는 이를 대대성(對待性)이라 하고 인류학에서는 이를 대칭성 이론이라 한다. 이 총화를 이룬 것이 이른바 대동(大同)이다. 산경표가 백두산에서 출발하는 시선이라면, 내가 담론화하는 해경표는 태평양 적도에서 출발한다. 여러 개의 지류 중 황해난류(한국연난류)가 한해륙 서해로 올라오는데 그 정점 혹은 기점에 흑산도(黑山島)가 있다. 흑조의 끝이어서 흑산도다. 산경표가 백두산을 중심으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을 대간(大幹)으로 읽고 거기에 12지류를 정맥과 정간으로 읽으며 그 안의 도시와 강과 섬들을 배치하는 국토 인식론이라면, 해경표는 적도를 시발로 하여 한국연난류를 본류로 삼고 다섯 개의 만을 설정하며 다시 그 안의 소물골론으로 읽어내는 국토 인식론이다. 물골을 따라 오르면 중물골이든 소물골이든 그 끝자락에는 여지없이 사람들이 모이고 마을이 구성되며 도시와 문명이 움자리를 틀었다. 큰 물골에는 큰 도시와 문명이, 작은 물골에는 작은 도시와 문명이 생성 소멸되었다. 지구별 어느 한 곳도 예외인 곳이 없다. 산맥과 산골을 말하고자 한다면 물맥과 물골을 더불어 얘기해야 한다. 산맥만 얘기하는 것은 반쪽만 얘기하는 것이요, 산골만 살피는 것은 절반만 살피는 것이다. 산골에서 맑은 물 흘러내려 바다로 합하고 바닷물은 물때를 따라 강으로 산으로 거슬러 오른다. 강과 바다가 서로 밀고 밀리며 영역을 공유한다. 한해륙처럼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한 환경일수록 이 점 더 명료해진다. 남도사람들이 강과 바다를 호환하는 '갱번'이라는 작명을 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다. 갯벌을 토양 삼는 생활용어이자 음양을 합일하고 천지사방을 통합하는 지극한 철학적 언명(言明)이다. 근자에 이를 철학적으로 꿰뚫어 보았던 이가 김지하다. 그래서다. 두 번의 천년이 지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나라의 비전과 총론을 어찌 설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이 땔나무꾼은 작은 향나무 하나 갱번에 묻는 일을 계속하려 한다. 남도땅 어느 한적한 끝자락에 매향비 하나 세워두는 일, 이것이야말로 이 변혁의 땅 갱번에서 대를 이어가실 존재들을 영접하는 일이지 않겠는가.

〈남도인문학팁〉

해만(海灣)의 나라, 남도만(南道灣)의 작은 물골들

남도만으로 묶을 수 있는 작은 물골들이 있다. 작은만(small bay)이다. 지면상 이름만 거론해본다. 함평만은 영광만, 무안만으로 불러도 좋다. 내가 이름 지은 무안만은 일제강점기 일부 학자들이 영산만이라 부르던 곳이다. 영산강을 부르는 다른 이름인 셈인데, 영산강이라는 이름이 근대기에 재구성된 이름임을 전제하면 이곳을 왜 만으로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호수가 된 해남만과 영암만도 고대로 오를수록 동아시아적 지평을 가지고 있는 바다의 하나였다. 마한 54소국 침미제국과 관련하여 따로 소개할 예정이다. 강진만, 득량만, 보성만, 여자만, 순천만, 광양만 등 산맥으로 보면 골짜기마다, 물맥으로 보면 물골마다, 도시가 형성되고 독창적 문화를 꽃피웠다. 차례대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내가 중만(middle bay) 중의 하나로 설정해둔 김해만도 작은 물골들을 거느리고 있다. 사천만, 자란만, 통영만, 다대만, 장승포만, 진해만, 수영만, 울산만, 포항만 등 골골이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문화 요충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해만(海灣)의 나라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발해만, 경기만, 금강만, 김해만과 더불어 남도만을 한해륙 5대 중만(middle bay)으로 설정하고 그 안의 작은 물골들을 소만(small bay)로 설정해둔다. 모름지기 창대한 미래는 이 본연의 특성을 톺아보고 문화적 비전을 세우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산경표에 대칭되는 해경표를 주장하는 이유다.